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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구 500만에 무려 100만개…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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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구 500만에 무려 100만개…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

입력
2009.06.0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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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엔 많은 게 많다. 산타 썰매를 끄는 순록이 사람보다 많고, 호수는 6만개(호수와 호수를 잇는 강줄기 형태의 호수를 합치면 20만개)가 넘는다. 그리고 또 많은 것이 사우나다.

핀란드인의 사우나 사랑은 각별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우나와 함께한다. 예전엔 집에서 아이를 낳던 곳도 사우나 안이었고, 사자(死者)를 말끔히 씻긴 곳도 사우나였다. 집을 지을 때도 사우나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한다.

핀란드 인구는 500만명인데 사우나는 100만개나 된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기본이고 하루에도 몇 번을 사우나에 들락거리는 이들이 많다. 전쟁터 최전방에도 사우나 텐트를 설치했을 정도다. 2차대전 때 밤새 진흙탕에서 구르던 병사들이 사우나에서 몸을 풀며 차분히 벌레를 잡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핀란드인의 삶은 일상도 휴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주말만 되면 더 평화로운 휴식을 찾아 숲과 호수, 바다로 떠난다. 그곳에 반드시 갖추고 있는 게 사우나다.

핀란드 키미토엔 섬의 핀호바란 곳으로 정통 핀란드식 사우나 체험을 떠났다. 핀란드 사우나의 원조는 통나무집에서 나무를 때어 돌을 데우는 스모크 사우나다. 요즘엔 보통 전기로 돌을 데워 사우나를 즐긴다. 한국인들이 전통 숯가마에 들어가야 제대로 땀을 뺐다고 하듯, 핀란드인들은 매캐한 연기 자욱한 스모크 사우나를 최고로 친다.

핀호바의 사우나는 전나무 숲 속에 있다. 통나무로 지은 사우나 안으로 계곡물을 끌어들인 것이 특징이다. 사우나를 즐기며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몇 개의 촛불만으로 불을 밝힌 사우나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돌계단이 보이고 소리로만 들리던 계곡물의 흐름도 눈에 들어왔다.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온기를 호흡한다. 매캐한 연기에 눈이 조금씩 쓰려온다. 사우나 한복판에는 뜨겁게 달궈진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30톤이 넘는 이 돌무더기는 3일 이상 오로지 장작으로만 달궈놓은 것이다. 돌무더기 위로 물을 한 바가지 뿌려대자 훅 하고 수증기가 뿜어져 오른다. 열기도 함께 번져왔다. 비로소 몸은 수증기와 땀이 섞여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몇 바가지 물을 더 뿌리며 스모크 사우나에 몸을 데운다.

훈증의 열기에 땀이 주룩 흘러내렸고, 백야에 적응하느라 생긴 피로도 함께 흘러내렸다. 눈이 따가워서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밖으로 나왔다. 달랑 수건 하나만 두른 상태다. 핀란드의 청정한 숲의 바람이 몸을 식혀준다. 이 청량함이란. 촉촉해진 몸으로 숲의 향이 스며든다.

맨발에 전해오는 흙길의 부드러움. 온 몸을 구석구석 훑는 숲 바람에 몸은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다. 박하향이 퍼지듯 피부가 시원해진다. 수건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알몸으로 맘껏 숲길을 달리고 싶다. 자연의 옷을 입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 초록이 온 몸을 휘감는다.

사우나로 몸을 풀고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하늘이 어두워지는 걸 보니 이제 자정이 가까워졌나 보다. 숙소는 사우나 바로 옆 나무 위에 만들어진 오두막이다.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 공중의 방에 들어선다.

허클베리핀의 집에 초대된 느낌이다. 순백의 시트를 덮고 눈을 감는다. 전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자장가로 들린다. 핀란드의 숲은 그렇게 몸으로 들어왔다.

키미토엔(핀란드)=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길에서 띄우는 편지/ 핀란드에서

핀란드 가이드북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누군 뜨거운 걸 좋아하고 다른 이들은 차가운 걸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빛을 좋아하고 또 다른 이들은 어둠을 좋아한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겨울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핀란드는 이런 극단적인 대비를 모두 가지고 있다."

핀란드의 태양은 우리와 다르게 뜨고 집니다. 여름엔 백야가, 겨울엔 흑야가 지배합니다. 핀란드를 여행하는 내내 왠지 몸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시차가 아닌 빛의 차이로 생긴 약간의 두통이었습니다. 몸에 밴 낮과 밤의 시간 비율이 허물어지면서 피로가 생겼나 봅니다.

이곳의 해는 오후 10시 반이 지나서야 수평선을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이후도 하늘은 여전히 훤합니다. 11시쯤에도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검정색이 깃든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벽 3시가 되기도 전에 하늘은 다시 밝아오고 새 날이 시작됩니다. 여름이 깊어지면 낮은 더욱 길어지겠죠.

핀란드의 여름은 골퍼들에겐 천국이 아닐까 싶더군요. 몸만 버텨준다면 하루 서너 번의 라운딩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백야의 '끝장 골프'라, 골프 중독자들은 혹할 만 하겠지요.

핀란드에서 사우나가 일상이 된 것도 긴 낮과 긴 밤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서일 겁니다. 낮이 길다고 계속 깨어있을 수도, 밤이 길다고 계속 잠만 잘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해서 핀란드인들은 인위적으로 밤과 낮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절기엔 완벽히 빛을 가리는 두꺼운 커튼으로 긴 낮을 차단시킵니다. 동절기엔 브라이트 라이트(현지어로 키르카스발로람프)로 집안에 인공태양을 비춥니다. 일반 전등과는 다른 것으로, 보통 거실이나 부엌의 창가에 설치하는 조명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이 불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빛이 없으면 사람은 힘도 떨어지고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핀란드에선 우울증 환자에게 내놓는 처방 중 하나가 가만히 앉아 이 브라이트 라이트 빛을 30분 이상씩 쬐는 것입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빛과 어둠도 너무 부족해도 너무 많아도 탈인 것 같습니다. 적당함의 소중함을 새삼 몸으로 배우고 온 여행길이었습니다.

이성원 기자

■ 벵츠케르섬 등대 발트해의 아름다운 밤 밝히고…

핀호바가 있는 키미토엔 섬 앞바다는 아키펠라고 국립공원이다. 우리의 다도해국립공원과 비슷한 '섬들의 천국'이다. 발트해 최상의 청정지역으로 400개가 넘는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다. '빙하시대의 자식들(Child of Ice Age)'이란 별칭을 지닌 생태계의 보고다.

아키펠라고 해역의 끄트머리에 아키펠라고의 랜드마크인 벵츠케르 섬이 있다. 핀란드 헬싱키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탈린 등에서 서부 유럽으로 오가는 바다 길목에 있는 섬이다.

이 섬이 유명한 건 등대 때문이다. 1906년 세워진 이 등대는 높이 48m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선 가장 높은 등대라고 한다. 등대섬으로 가는 출발점은 아키펠라고 네이처센터가 있는 캐스나스다. 이곳에서 12인승 RIB보트를 타고 달린다. 바닥은 유리섬유, 둘레는 고무튜브로 제작된 지붕이 없는 보트다. 일반 고무보트보다 훨씬 빨리 내달린다.

우주복 모양의 두툼한 방한, 방수복을 껴 입고 보트에 올랐다. 보트는 시속 80km의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달렸다. 바다 위에서 그것도 하늘이 열린 고무보트에서 느끼는 체감 속도는 훨씬 빨랐다. 손잡이를 꽉 붙드느라 팔에 경련이 일 정도였고 파도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엉덩이는 곤장을 맞은 듯 후끈거렸다.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보트의 속도가 갑자기 줄었다. 그제서야 가슴에 푹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보니 벵츠케르 섬의 등대가 눈 앞이다. 거대한 돌집. 마치 중세의 성을 마주한 듯한 엄숙함이 느껴졌다.

등대는 핀란드의 현대사를 짙게 담고 있다. 1930년대 후반까지 섬은 평화로웠다. 등대지기들의 식구가 늘어 한때는 30명 가까이 함께 살기도 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기가 21명이나 된다고 한다.

등대지기인 파울라 윌슨 씨는 "여기서 태어난 한 아이가 6년 만에 다른 큰 섬으로 갈 기회가 있어 나갔다가 나무를 처음 보고는 부모에게 '큰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했다.

193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 전쟁의 최전선이 이 등대 주변에도 형성됐다. 41년 러시아군이 야밤을 틈타 등대를 공격했을 때 등대 안에 있던 핀란드군이 치열한 접전 끝에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68년 등대 자동화 이후 무인 등대로 남았던 이곳은 투르크 대학의 복원 작업을 거쳐 96년부터 일반에 역사 탐방지로 개방되고 있다.

등대엔 6개의 객실이 있어 하룻밤 등대지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등대는 5~9월에만 개방된다. 1년에 1만6,000명이 등대를 찾는다고 한다.

벵츠케르(핀란드)=글·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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