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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또 다른 비극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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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또 다른 비극 없도록

입력
2009.06.0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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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미 작고한 분을 잘못 논의했다가는 결례를 범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근 보름 가까이 모든 매체들이 그분 이야기로 메워왔기 때문입니다. 어제 날짜의 한국일보 오피니언 난만 해도 칼럼과 사설 두 개가 나갔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오늘은 그 분의 선택과 국민장 기간에 느꼈던 것에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5월 23일 그 분이 서거한 후,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연일 일어났는데도 그를 지적하는 분들이 드물었고, 그를 덮어두면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마침내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우선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항변하는 게 옳은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택한 걸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도 민망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무래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방법이었습니다.

또 오지 말라는 조문을 가서 물세례를 받은 정부 여당 지도자들과 자국의 대통령이 보낸 화환을 짓밟은 노사모의 태도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군요. 봉변을 당할 것을 알면서 굳이 간 분들은 애도보다 국민들의 눈도장을 찍는 게 목적이었고, 조문객들의 멱살을 잡은 분들은 정말로 '노바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생존 시에는 차별화하려고 애쓰다가 상주 노릇을 선언한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의 사죄, 쟁점 법안과 대북 정책의 기조 전환, 법무ㆍ 검찰 라인의 징계 등을 요청하는 것은 이 참에 인기를 만회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탄핵 정국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6.5% 앞선 지지율은 곧 원점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서울광장을 놔두고 대한문 쪽으로 분향소를 밀어내고, 국민장이 끝나자 강제 철거한 경찰에게도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가 원수가 최대한 예우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그렇게 한 것은 그 명령을 무시한 것인지, 진의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런 방식은 중립적인 사람들마저 노오란 물결 속으로 밀어넣는다 게 제 판단입니다.

이제 정부와 여당은 왜 '실패한 대통령'의 추모객이 전 국민의 10%인 500만 명이나 되었는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개각이나 속 빈 사과보다는 앞으로 법치는 국민을 위해서만 추구하고, 피의사실 공표 같은 범법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다음, 가난한 서민들을 끌어안기 위한 정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야당과 노사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조전을 보낸 지 4시간 만에 핵실험을 하고, 뒤이어 대륙간탄도탄 발사 준비를 하는가 하면, PSI 가입했다고 전면 대결을 선언한 상황이니 아무리 정부와 여당이 밉더라도 화합과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돌파하고, 4~5%의 경제 성장을 계속 유지해온 노무현 정권이 패배한 것은 편 가르기에 몰두한 결과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편히 잠드시고, 다음 선거에 표를 얻고 싶으신 분들은 화합과 상생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로에 서 있으니까요.

尹石山 시인·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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