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은 원래 차도였다. 옛날 표현으로 '시청 앞 로터리'쯤 되는 곳이다. 시민의 마음 속에 지금의 서울광장으로 자리잡은 계기는 1987년 6월 항쟁과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이다. 2004년 5월 1일 준공된 잔디광장은 원래 바닥을 파서 조명장치를 넣고 유리로 덮은 화려한 공간을 만들려던 것이다. 그러다 예산이 모자라 잔디로 덮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중구 태평로 1가, 면적은 1만3,207㎡, 보름달 모양의 잔디밭. 공식 명칭은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으로 'Culture & Art in Seoul Plaza'이다.
▦서울광장은 덕수궁 정문 대한문의 앞마당처럼 자리잡고 있다. 역사의 '주류'가 경복궁에 머물 때 덕수궁엔 '비주류'가 모여 있었고, 대한문 앞은 늘 '저항과 재기의 무대'였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도망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불타버린 경복궁 대신 민가 여러 채를 헐어 시어소(時御所)로 만들어 저항의지를 다졌던 곳이다. 1897년 일본 세력에 밀려난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와 재기를 노렸던 곳이다. 고종 보호시위가 일어난 곳이며, 3ㆍ1운동, 4ㆍ19혁명, 한일회담 반대 데모의 중심지로 '저항과 재기의 명소'가 되었다.
▦광장(廣場)의 뜻은 '사람이 모이는 넓은 곳' 정도겠지만 진정한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룸(forum), 영국의 스퀘어(square), 프랑스의 플라스(place), 독일의 플라츠(platz), 이탈리아의 피아짜(piazza), 미국의 플라자(plaza) 등이 그것이다. 그리스ㆍ로마 시대엔 시민들도 정치에 참여해 발언하는 국회의사당 같은 장소였으며, 암흑기 중세엔 종교행사 장소로 한정됐다가, 르네상스를 맞아 계몽과 집회의 상징으로 혁명과 권위에 대항하는 '이성의 장소'가 됐다. 교통광장으로 몰락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였다.
▦시청 앞 교통광장이 서울광장으로 바뀐 것은 시기적으론 뒤졌지만 탈산업주의로 광장의 복원과 재발견이 이뤄진 세계적 추세와 다르지 않다. 서울광장이 '저항과 재기의 명소'를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것을 탓할 순 없다. 지난해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가 반정부시위 형태로 흐른 것도 어찌 보면 서울광장의 '팔자'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와 '주류'의 대응방법이다. 서울광장 자체를 없애겠다고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이젠 좋은 광장 하나쯤 가질 만하며, 그것을 악용하는 무리들을 물리칠 만한 힘을 갖고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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