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정국의 와중에 갑자기 미화 100달러 위조지폐인 '슈퍼노트'가 현안으로 불거졌다. 북한 핵실험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금융제재 방안이 논의되는 중이기에 더욱 관심이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있다. 일각에서는 "슈퍼노트를 만드는 불법국가 북한을 응징하자"는 여론몰이를 위한 보수 네오콘 진영의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2005년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해 8월 미국 북동부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앞바다에 뜬 호화 요트 '로열 참'호. 위폐 무기 마약 등을 미국으로 몰래 반입하던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조직에 위장 잠입해 있던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가짜 딸 결혼식을 열었다. 범죄 조직 구성원과 거래처 요인들이 하객으로 초대됐다. FBI는 현장을 덮쳤고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이른바 '로열 참' 작전이다. 비슷한 시기 유사한 작전이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수행됐는데 그 작전명이 '스모킹 드래곤'이다.
이 FBI 요원은 이에 앞서 하객에게서 위폐를 구입하고 대금을 지불했는데 그 돈이 마카오에 있는 은행 BDA에 입금된 게 확인됐다. FBI는 BDA를 내사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이 52개 계좌에 2,500만달러를 예치했고 불법자금을 세탁한 사실을 밝혀냈다. 미 재무부는 이에 따라 9월 20일 BDA를 '돈세탁 주요 우려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그 여파로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금융 거래를 중단했다. 이른바 BDA 대북 금융제재의 시작이었다.
이번엔 보수 성향의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스가 2일 북한의 슈퍼노트 제조설을 새삼스레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 신문은 북한 정권 실세인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연루설을 제시했고,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한국 경찰이 100만달러 상당의 슈퍼노트를 압수한 사실도 보도했다. 실제로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슈퍼노트 9,904장이 압수됐는데 이 위폐가 북한에서 제작됐다는 추정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이 금융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슈퍼노트 제조를 이유로 제재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검찰국은 3월부터 이 사안을 조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 못하게 하는 게 핵심인데 결국 돈줄을 어떻게 죄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순한 의도라는 비판도 있다. 부산 위폐 사건은 이미 공개됐던 사실이고 북한이 제조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는데 이를 다시 문제 삼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을 나쁜 국가로 몰아가야 국제사회의 제재가 원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네오콘들이 일부러 같은 성향의 언론에 정보를 흘렸을 수 있다"(외교소식통)는 추정도 나온다.
■ 슈퍼노트
진짜 지폐와 같은 잉크 인쇄기 등을 사용해 매우(super) 정교하게 만든 미화 100달러 짜리 초정밀 위조지폐(note). 미국 달러의 경우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용 가능한 기축 통화인 만큼 주요 위조 대상이다. 미 재무부가 2006년 발간한 '위조지폐 유통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슈퍼노트는 7,000만달러 정도가 유통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1989년부터 슈퍼노트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나 북한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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