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40년도 넘게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든 70대 노인에 대한 선고에서 조선시대 유랑시인 김삿갓의 한시를 인용하며 불우한 처지를 참작하고 선처했다.
문모(75)씨는 어릴 때부터 유랑극단을 따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으나 부인과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 친지도 없이 혼자 살아왔다.
그는 1962년 징역 8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차례에 걸쳐 40년 이상을 구치소ㆍ교도소ㆍ감호소에서 복역했다. 문씨의 범죄수법은 늘 가게에 가짜 금장시계를 맡기고 "금방 돈을 갖다 주겠다"며 몇 보루의 담배를 외상으로 받아 챙기는 것이었다.
대전지법 형사항소3부(부장 김재환)는 상습사기 혐의로 또다시 기소된 문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7월로 감형했다고 3일 밝혔다. 선고 전 구금일수를 형량에 산입했기 때문에 문씨는 이달 13일께 석방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의 양형 판단 부분에서 "선고에 앞서 김삿갓의 시 난고평생(蘭皐平生)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며 운을 뗐다.
이어 "시인(詩人)과 수인(囚人)의 삶은 완연히 다를 것도 같지만, 유랑생활 끝에 객사한 김삿갓의 삶을 그린 시가, 가족ㆍ재산 모든 것을 잃고 이 교도소 저 감호소를 들락거리다 인생을 허비하고 중풍에 걸린 피고인의 딱한 처지를 읊은 것처럼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또 "호구지책으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무기수보다 더 길지도 모를 기간을 복역하게 된 것은 현행 형벌 및 교정 제도가 피고인에게는 실패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형제간 유산 다툼에서 비롯된 형사사건의 판결에서 "혈육 간에 다퉈 의리를 잊고 재물을 탐하는 자는 엄히 징계해야 한다"는 목민심서 구절을 인용하며 충고하기도 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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