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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전략도 기술도 판로도… 굴러갈 '세 바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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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전략도 기술도 판로도… 굴러갈 '세 바퀴'가 없다

입력
2009.06.0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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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전거 산업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정부는 "5년 안에 자전거 생산 3대 국가 이른다"는 야무진 목표를 세우고 자전거 산업을 녹색 성장의 핵심으로 키워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 또 험하다. 자전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철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세계 자전거 시장은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 조차 찾을 수 없다. 100만원이 넘는 고가 자전거는 대만 산이 대부분이고, 수 십만원 대 보급형은 100% 중국에서 만든다. 변속기 등 핵심 부품은 일본이, 고가의 자전거 용품은 유럽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무작정 자전거만 많이 만든다고 자전거 산업이 되살아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품을 해외에서 사와 중국보다 비싼 임금을 들여가며 자전거를 찍어야 하기에 만들수록 손해만 쌓여가는 셈이다.

초기 자전거 산업의 중심지였던 서유럽은 인건비 상승으로 어려움에 부닥쳤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최고급 제품'을 소량 생산하는 전략으로 명품 이미지를 구축했다. 일본은 핵심 부품 개발로, 대만은 고가 자전거 생산 전략으로 성공했다.

우리 역시 고가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크랭크, 브레이크 시스템 등 핵심 부품을 적극 개발하거나 GPS(위성항법장치), RFID(무선주파수인식) 등 IT기술을 접목한 자전거를 개발하는 것이다.

자전거 용 신발, 헬멧 등 부품에 버금가는 수익이 보장된 자전거 용품 시장도 좋은 공략 대상으로 꼽힌다. 또 이런 기술에 세련된 디자인으로 옷을 입혀 '사고 싶은 자전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많다.

● 기술 개발만이 살 길이다

자전거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만 정부는 1992년 자전거연구원을 세웠다. 값싼 자전거 대신 기술 개발에 승부를 걸었던 것. 대만은 연구원을 전초 기지로 기술력을 키워 '자전거 생산 1위 나라'라는 영예를 차지함과 동시에 2008년에만 수출로 1조5,000억원 이상(완성차 기준)을 벌었다. 현재 전문 연구원만 70명이 넘는다.

반면 우리는 정부 차원의 연구원은커녕 변변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없었다. 아무런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던 민간 업체 25개 대표들이 지난해 여름 공동 기술 개발을 위한 '자전거 연구조합'을 만든 게 고작이었다.

다행히 지난 4월 정부, 업계,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대전 대덕특구에 자전거 기술 개발을 위한 R&D 센터를 만들었다. 원경배 자전거 조합 이사장은 "지난해 가을 대만 연구원을 찾아가 연구원장에게 우리의 연구 성과를 보였더니 깜짝 놀라 했다"라며 "비록 늦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라고 말했다.

● 부품이든 자전거든 팔 곳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수요 기반이 있어야 한다. 업계는 국산 부품과 용품을 일정 쿼터 이상 의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쿼터제' 도입을 바라고 있다. 아울러 안정적 수요를 만들기 위해서 선진국에 한참 뒤지는 자전거 보급률(16.6%)과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1.2%)을 정책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는 이를 위해 표준화된 품질을 갖춘 한국형 공공자전거를 개발해 공공 자전거로 우선 공급하는 동시에 공공기관과 기업을 중심으로 국산자전거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한편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세계 시장에 인지도가 높은 국내 자동차 업계와 함께 '공동 브랜드'작업을 벌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이란에 자전거용 신발 첫 수출 PSV 정진욱 사장

자전거 용 전문 신발을 만드는 PSV의 경남 양산 공장에서 만난 정진욱 사장은 최근 사이클 선수용 신발 600족(약 8,000만원 어치)을 이란에 수출했다.

그는 "선수 용이고 크지 않은 규모"라고 멋쩍어 하면서도 "자전거 용품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 우리 나라 실정에서 우리가 개발한 제품을 해외에 수출한 첫 사례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했다.

정 사장이 자전거 신발 개발에 뛰어든 것은 2년 전. MTB(산악자전거) 마니아가 늘고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 족도 증가하면서 자전거 용품 시장 규모도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게다가 5년 가까이 인라인 스케이트 개발을 통해 쌓아 놓은 기술력이 있기에 충분히 통하리라 예상했다.

물론 과정은 눈물겹다. 지난 2년 동안 직원 5명과 밤 새기를 밥 먹듯 하며 수 십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지난해 여름 사이클 선수용 신발 개발을 마무리했다. 틀 하나를 만들어 실패할 때마다 1,000만원 이상을 ???어려움 끝의 결실이다.

그는 "자전거 용품 시장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안성맞춤"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해마다 20만 개 이상의 자전거 용 신발(10만 원 대~40만 원 대)과 헬멧(평균 30만원 대)이 팔리고 있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

정 사장은 "인라인 스케이트 산업을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인라인 스케이트는 2004년까지만 해도 80개가 넘는 외국 브랜드가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산 제품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힘써 온 국내 업체들이 외국 브랜드와 견줘도 뒤지는 않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고 국내외 시장 역시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국내 인라인 업체들이 여러 품종을 적게 찍어서 파는 '다품종 소량 생산'전략을 유지한 것도 중요한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디자인을 빨리 바꾸고 기능도 개선해서 이를 반영한 새 제품을 즉시 내놓는 게 유리하다는 것. 그는 이 원칙을 철저히 따랐고 그가 만든 인라인 스케이트 '솔베인'은 전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정 사장은 "자전거 용 신발 생산에도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유명 스포츠 브랜드가 주문자 상표 부착 제작(OEM) 방식으로 손 잡자고 제의했지만 뿌리 친 이유도 마찬가지.

정 사장은 정부의 자전거 산업 집중 육성 계획을 누구보다 반겼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먼저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부품이나 용품 개발에 뛰어든 국내 업체 대부분이 영세 업체"라며 "기술력은 있지만 팔 곳이 없어 막막한 업체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공공 부문에서라도 국내 업체의 부품, 용품, 자전거 완성차를 일정 비율 이상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성인 선수는 아니더라도 초ㆍ중ㆍ고 학생들이라도 의무적으로 국산 용품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정 사장은 밝혔다.

■ 이형기 부경대 교수

국내 대표적 자전거 전문가인 이형기(58) 부경대 전기제어공학부 교수는 자전거 산업의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정부의 자전거 산업 지원이 특정 업체나 부품에만 치우쳐서는 안되며 비슷한 부품을 만드는 업체들을 한데 묶어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 자전거 산업의 현실은 열악하다. 원인은 무엇인가.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자전거 인구가 줄면서 자전거 생산 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고 남은 업체들도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겼다. 이후 국내 업체들은 기술 개발보다는 값싼 자전거 생산에 초점을 맞췄고 더 이상 경쟁력을 얻지 못했다."

- 부품 분야의 육성은 가능한가.

"국내부품 업체는 전멸 상태다. 국내 업체 상표를 단 자전거 중 95% 이상은 일본, 유럽의 부품과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국제적인 자전거산업의 분포를 보면 부품 육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자동차 경쟁력을 감안할 때 부품 분야 역시 정부의 의지와 업계의 노력만 뒷받침 된다면 충분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 국내 업체들이 중국으로 옮긴 자전거 공장을 국내로 옮기려고 고민 중인데.

"옛 기반이 있기에 국내에서 자전거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한정된 수요에 중국보다 비싼 인건비 까지 감안하면 국내에서 자전거를 만드는 게 과연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또 다른 문제는 없나.

"환경 부분도 문제다. 도장 등 자전거 생산 과정이 환경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자전거 산업을 녹색 성장의 매개체로 삼겠다면서 되려 환경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기술 표준을 하루빨리 정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자전거 보조 동력 자체(PAS)의 경우 유럽, 일본의 기준과 중국의 기준이 다르다. 도로교통법 상 전기자전거의 정의가 없어 보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 역시 많이 남아있다."

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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