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제도는 참여정부 시절 입안 되어 현 정부에 이르러 정책적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 추진되고 있다. 이미 2008년 40여 개 대학에서 218명의 입학사정관을 채용하여 4401명의 학생을 선발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57억 원을 지원한 바 있으며, 올해도 236억 원의 추가 지원이 발표되었다.
실효성과 부작용 고민을
그러나 이러한 정책 드라이브에 대해 제도의 정착과 합리적인 운영을 걱정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각 대학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대학지원금을 겨냥한 급조된 대응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조차 '속도 조절'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제도가 특목고와 같이 중등교육 단계까지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제도의 정당성과 정책적 실효성, 그리고 사회적 파장 등을 차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차별성만을 부각시켜왔던 현 정부가 참여정부의 정책적 유산을 잇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대학 자율성 확대를 주창한 정부가 각종 정책 지원금과 평가지표 활용을 통해 대입제도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모순이다. 특히 이 제도의 성격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점은 더욱 흥미롭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를 뜻한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이러한 이율배반적 속성을 전형적으로 지니고 있는 제도다. 그것도 한 쌍이 아닌 다수의 모순 명제 쌍을 포함하고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1922년 다트머스 대학이 최초로 도입하면서 미국의 대입제도를 특징짓는 대표적 제도로 자리 잡았다. 미국 대입제도 연구자인 제롬 카라벨(Jerome Karabel)은 이 제도의 특징을 자유재량(discretion)과 불투명성(opacity)이라는 모순되는 단어로 설명한 바 있다.
자유재량은 대학의 입학담당자가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불투명성은 선발과정의 속사정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음을 뜻한다. 흔히 선발의 공정성이 공적 객관성과 동의어로 간주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대학의 재량권이 공정성과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입학사정관 제도의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입학사정관 제도의 장점으로 인정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대학 이전의 교육과정에서 학생이 성취한 정량화된 수치(석차 혹은 원점수)보다는 질적인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지금까지의 우리 초.중등교육의 교육과정 운영과 평가 관행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학생의 미래 잠재능력을 평가, 어린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있다.
반면에 새로운 방식의 사교육 시장이 개척될 것이라는 비관도 없지 않다. 입학사정관 제도를 겨냥한 전문 컨설팅 비용의 증대와 유치원부터 차별화된 입시준비 코스의 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학생의 '자연적인 소질 및 능력'과 '준비되고 관리된 능력'은 모순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한 학생 선발은 인종, 계층, 지역 등과 같은 학생의 배경 범주를 지양하여 개별성(개인)을 선발 단위로 삼는다. 그렇지만 선발에 있어서 각종 정책적 배려가 끼어 들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이러한 방향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를테면 현재 미국에서 입학사정관 제도는 전통적인 엘리트 혹은 유력가 집안 자녀들의 입시통로로 활용되는 동시에 체제 유지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소외계층 자녀를 선발하는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속도전'으로 치닫지 않아야
여기서 '기여입학제도로 악용'이라는 불쾌한 연상이 등장한다. 이렇게 이율배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앞에 두고서, 입학사정관의 양성이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지금처럼 '속도전'에 끌려가게 된다면, 입학사정관 제도 또한 실패한 교육제도의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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