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검찰은 이중의 타격을 입게 됐다.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해선 '표적수사', 현 정권 측근들에 대해선 '부실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책임론에 휩싸여 있는 검찰로선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의형제인 천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의 핵심 인물로 수사 초기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측근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천 회장 관련 수사는 검찰의 칼끝이 '살아있는 권력'도 겨누게 될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돼 왔다. 때문에 검찰은 천 회장의 2000년 이후 세금납부 내역까지 분석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날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검찰의 '공든 탑'은 무너졌다. 검찰은 천 회장에 대해 적용한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그리고 증권거래법 위반 등 세 가지다. 이 중 수사의 핵심은 알선수재 부분이었다. 검찰은 천 회장이 지난해 7~11월 박 전 회장의 청탁을 받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에게 전화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
천 회장은 그 대가로 박 전 회장에게서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격려금으로 전달받은 15만위엔(2,300만원 상당)과 박 전 회장의 회사에 투자한 돈 중 갚아야 할 빚 6억2,300만원을 탕감받는 방식 등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천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한 사실은 소명됐으나, 그 대가로 중국 베이징에서 받은 돈과 박 전 회장의 회사에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선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천 회장이 박 전 회장에게서 받은 6억4,600만원을 청탁의 대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사실상 천 회장 개인 비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증여세 등 100억여원의 세금 탈루 및 계열사 합병과정에서의 주가조작 혐의까지 포함해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세포탈 혐의는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권거래법 위반 부분은 일응 소명이 있다고 인정되나 범해의 정도와 동기 등을 참작할 때 비난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적 관점에서의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천 회장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천 회장은 이날 영장이 기각된 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대검 청사를 빠져나갔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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