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사평-오기택 심사위원장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제36회 서울보훈대상의 심사를 맡아 진행하면서 1970년대 도약의 시대에 부응하여 국가유공자들의 공훈을 기리고 유가족의 생활 안정과 사기 진작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한국일보사의 노력이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ㆍ1운동으로 순국하신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독거노인들과 낙도 어린이 등 사회의 그늘진 곳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으신 독립유공자의 유족이 있는가 하면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국가대표 탁구선수로 선발되어 세계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장애인 재활체육의 기반 조성에 헌신한 1급 중상이자의 인간 승리가 있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자랑스런 '민족정기'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눈 앞에 닥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해 세계 역사를 선도해 나가는 국가로 키워나가는 것만이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6월을 맞이하여 70만 보훈가족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백범기념관 상임운영위원
■ 영예의 수상자들
●상이군경 부문 장춘배씨
장춘배(張春培ㆍ54) 대한장애인탁구협회장은 1976년 군 복무 중 작전을 수행하다 척추 부상을 입고, 국가유공자가 됐다. 한창 나이에 벌어진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보훈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사회적응기간을 보내던 그는 탁구를 통한 재활체육에 눈을 떴다.
이 때부터 시작한 탁구로 79년부터 92년까지 장애인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84년 LA, 88년 서울, 92년 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에서 잇따라 은메달을 수상했고, 이후에는 감독으로도 활약하며 우수한 결과를 냈다.
장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유공자들의 재활체육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92년 국가유공자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국보훈스포츠클럽'을 결성했다. 이 클럽은 이후 우리나라 대표급 장애인 선수들을 양성하며 각종 국제대회에서 국위 선양에 앞장서고 있다.
2004년 중상이 유공자들이 재활체육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상이군경회 산하에 '보훈체육회'를 발족시켰다. 94년엔 한국장애인탁구협회 창립에 참여했다. 중상이 국가유공자를 위한 재활체육시설 구축에도 기여했다.
불모지에 가깝던 장애인 체육활동을 활성화하고 저변을 확대시킨 공로로 2007년 45회 대한민국체육상에서 최초로 제정된 '특수체육분야'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탁구계의 산 증인인 그는 특히 어려운 형편의 장애인 탁구계를 위해 사비를 털어 선수를 양성하고 코치를 영입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상이군경 부문 박종길씨
1970년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박종길(朴鍾吉ㆍ61) 한국신지식교육진흥원장은 교전 중 부상을 입고, 99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그는 70년대 농촌계몽운동을 시작으로 80년대 이후 투철한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통일안보의식 고취에 힘써 온 '국가안보 전도사'다. 80년 민방위 강사로 위촉된 뒤 23년간 예비군과 민방위대원 등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담당, 국가관 고취에 진력했다.
또 82년 민족통일협의회 간사장, 86년 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는 등 20여년 간 각종 단체 및 기관, 직장, 학교 등을 대상으로 통일, 민주화시대의 안보관, 대북정책, 이산가족 등과 관련한 수많은 강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도덕성 회복운동을 통해 활발한 계도 활동을 펼치고, 출소한 재소자들에게는 사회 생활 적응 의지를 키워주는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면에서 사회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가 열릴 때마다 상설순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며 대국민 홍보를 통해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했다.
그는 평소 신념대로 사후 각막 등 장기기증을 서약하는 등 생명나눔 실천에 앞장서 왔으며, 매년 장애인과 독거노인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불우이웃돕기에도 힘쓰고 있다.
보훈교육원에 출강해 강연을 통해 보훈가족에게 명예와 자긍심을 심어주고, 1일 보훈명예교사로 임명돼 학생들에게 보훈정신을 교육하는 등 보훈문화 확산에도 힘을 쏟았다.
●무공수훈자 대상 김용철씨
김용철(金用喆ㆍ79)씨는 광복 후인 1948년 대전차 포병단에 입대한 전쟁 1세대다.
1949년 의가사 제대를 한 후 경동중학교 3학년에 편입했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포기하고 다시 육군에 입대했다. 1951년 동두천 전투 시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원대 복귀, 643전투, 1057전투, 화천전투 등 260여 차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부상을 무릅쓰고 온 몸으로 조국 수호에 앞장 섰던 그는 56년 전역 후에는 산업 현장에서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활약했다. 1960년 신한제분 부평공장 기관장을 시작으로, 동화기업 인천목제공장 공장장, 동양제과 생산과장, 중앙염색공장 공장장 등을 역임했다.
260여 차례에 달하는 그의 전투 경험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1999년 육군본부 소속으로 전사자 유해발굴단이 구성되자 당시 6사단 전우회장이던 그가 참여했다. 전쟁의 산 증인으로서 전투 현장을 정확히 지적, 지금까지 3,400여구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보훈선양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적지 순례를 통해 전국 43곳의 전적비를 찾아 충혼제를 개최했다. 매년 최전방 군부대를 찾아 나라 사랑을 고취하고 군 장병들을 격려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발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래형 난방시스템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이미 2개의 특허를 취득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애국지사 유족부문 안상문씨
안상문(安商文ㆍ70)씨의 조부 안창렬(安彰烈)씨는 1919년 독립만세운동 중 순국했다. 안씨는 조부가 1980년 대통령 표창과 함께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이후 그 뜻을 이어받아 보훈 활동과 봉사 활동에 힘써왔다.
안씨는 1983년 독립유공자 유족중앙회 이사를 시작으로 1986년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1997년과 2004년에는 사단법인 순국선열유족회 대의원으로 선임됐으며, 2004년 총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유족회에서 각종 안보 및 보훈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1976년부터 시작한 택시 운전을 발판 삼아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열성을 다했다. 평소 외출하기 어려운 장애인 및 독거노인 등에게 자신의 택시를 나들이 차량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관광버스를 마련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모범운전자인 그는 교통안전과 거리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을 펼쳤으며 교통경찰을 도와 교통행정 업무 보조 등 안전한 교통문화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가 서울 강동구 일대에서 출퇴근길 경찰과 함께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은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 됐다.
평소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라고 믿어온 안씨는 불우 청소년 및 벽지학교 학생 돕기에도 힘써왔다. 1983년 충북 영춘면의 한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그는 매년 시청각 교재 및 학용품을 자비로 마련해 전달했고, 서울로 초청해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경인지방환경청 명예환경 감시원으로 선임돼 서울 일대 뚝섬, 난지도 등 지역 환경 보존을 위한 파수꾼 역할도 하고 있다.
●전몰군경 유족 부문 최기정씨
최기정(崔基正ㆍ59)씨는 부친 고(故) 최종대씨(국가유공자)가 한국전쟁 때 전사한 뒤 조모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하지만 힘들고 벅찬 생활 속에서도 항상 주변을 돌아보며 남다른 봉사정신과 애국ㆍ애족 정신으로 모범이 돼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씨는 특히 지역사회 발전과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다. 1981년 서울청년회의소(JC) 지역사회개발위원장을 맡은 그는 강원 영월군 서면의 낙후부락과 자매결연 맺어 5년간 소득증대 사업 일환으로 연 3마리씩 5년간 한우를 지원했다.
1982년에는 143개국 회원이 참석한 제37차 세계청년회의소(JCI)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성공리에 개최, 한국을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가 전몰군경 유족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2년. '6.25전몰군경유자녀회' 서울지부장으로 그 해 음력 7월7일 4,000여명의 회원이 참여한 '아버지 장례식' 행사를 주관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6ㆍ25 전몰군경 유자녀의 사례를 알리면서 다시 한 번 국가에 헌신한 이들을 기념하는 계기가 됐다.
1996년에는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내 유자녀만 관리하는 관리부를 신설, 국가보훈처, 국회 등에 청원해 6.25 유자녀 수당 및 6.25 유자녀의 자녀 장학금 제도를 마련하는 등 유족 복지 증진에 힘썼다.
봉사활동에도 나서 2005년 10월 경찰박물관 개관일부터 현재까지 1,055시간 자원봉사를 했으며, 환경감시원으로서 자연보호 캠페인, 환경 오염감시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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