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앗! 뜨거워. 아직도 뜨끈뜨끈하네." "뜨거울 때 들어야 맛있어요. 하나 더 드릴까?"
지난달 28일 오전 11시40분 대전 중구 대흥동 대전시립노인종합복지관 구내식당. 한 할아버지가 무료 점심급식을 기다리던 100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막 쪄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나눠주고 있었다.
"호~, 옛날 찐빵 맛 그대로네." 어르신들은 찐빵을 호호 불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찐빵 할아버지' 얼굴에는 찐빵의 팥소보다 더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
강봉섭(79)씨는 '사랑의 찐빵 천사'로 불린다. 정성껏 찐빵을 만들어 가난한 이웃과 어린이, 노인, 환자 등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를 시작한 지 벌써 9년째다. "대충 따져서 그동안 32만개의 찐빵을 만들어 나눠준 것 같습니다."
사랑의 찐빵은 2001년 탄생했다. 강씨가 교회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 병원에 환자 위문차 들른 것이 계기였다. 일흔이 되도록 병원 신세 한 번 져본 일이 없는 그는 입원한 노인들의 힘겨운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다가 어려운 시절의 애환이 담긴 찐빵을 만들어 주면 노인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평생 빵을 만들어 본 일이 없었다. 농사를 짓고 우유대리점과 목욕탕 등에서 일했을 뿐이다. 그는 무턱대고 대전에서 제일 큰 중앙시장의 찐빵집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했고, 인심 좋은 주인은 흔쾌히 제조법을 일러줬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직접 만든 찐빵을 들고 병원에 찾아간 날, '맛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달리 반응은 좋았다. "사랑과 정성을 담았을 뿐인데 다들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너무 기뻐서 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날이 가면서 그는 병원 뿐 아니라 사회복지시설, 장애인학교, 경로당, 소년소녀가장 등도 찾아갔다. 해마다 적게는 100곳에서 많게는 200여곳을 돌며 찐빵을 나눠주고 있다.
2007년에는 기름유출사고를 당한 태안을 찾아 자원봉사자들을 찐빵으로 격려했다. 지난해에는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의 복구작업 현장에 찐빵을 들고 달려가기도 했다.
그는 요즘 하루 평균 200개 정도의 찐빵을 만든다. 새벽에 일어나 재료를 준비하고 오전 7시부터 밀가루 반죽을 해 찐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야 오전에 찐빵을 쪄내 점심시간에 맞춰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기관을 방문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는 500개까지도 만드는데 이런 날은 초저녁에 눈을 붙이고는 한밤 중인 한 두시부터 일어나 일해야 한다.
"사랑의 찐빵 하나에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도, 활짝 웃는 어린이도 있어요. 배가 고파 굽었던 노숙자의 허리가 펴지기도 하죠. 세상에서 저만큼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내년이면 팔순인 그는 하루 10시간 가까이 매달려야 하는 이 일을 힘들어 하기는커녕 "너무 즐겁고 행복한 노동이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찐빵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민이 생겼다. 재료비였다. 밀가루, 팥 등 재료비가 한 달에 수 십만원으로 늘어 처음처럼 자신의 용돈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주변에선 그가 넉넉해서 봉사를 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작은 아파트에서 아내 이정자(74)씨, 미혼의 딸과 함께 사는 그는 4년 가까이 리어카를 끌면서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거해 찐빵 재료비를 충당해왔다.
다행히 강씨의 찐빵 봉사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랑의 손길이 하나 둘씩 보태졌다. "교회 목사님이 매월 20만원씩 후원해주시는 등 몇 분이 도와주세요." 찐빵 만드는 공간도 병원 옥상, 교회 식당 등을 거쳐 지금은 노인종합복지관 마당의 가건물에 자리잡았다. 지난해 여름에는 박성효 대전시장도 밀가루 반죽기계를 보내왔다.
그는 "찐빵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이 가장 힘든 작업인데 이 기계 덕분에 이전보다 일이 70%는 줄었다"고 말했다. 대전시노인회에서는 최근 사랑의 찐빵 재료비 모금함을 설치했다.
하지만 강씨는 여전히 출가한 자녀들이 주는 용돈을 찐빵 만드는데 다 털어넣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바라는 것은 함께 봉사할 일손이다. 소문을 듣고 찐빵 조리법을 배우러 왔다가 일손을 거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한마음으로 계속 봉사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받는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찐빵 만들기를 그만둘 수 없어요. 소명으로 알고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대전'하면 '사랑의 찐빵'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겠죠."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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