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러진 지 이틀이 지났지만, 10만여명의 추모객이 몰리며 추모 열기는 수은주를 30도 위로 끌어올린 한낮 뙤약볕보다 더 뜨거웠다.
같은 날 고 김수환 추기경이 잠든 경기 용인 천주교성직자묘역에도 1,900여명이 찾았다. 김 추기경의 선종 105일째인 1일까지 묘소 참배객은 7만2,100여명에 달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추모 열기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 '연모(戀慕)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현실 사회와 지도층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투영된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사자(死者)들이 한국 사회를 움직인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서점가에도 추모 바람이 거세다. 지난달 암 투병 중 세상을 뜬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유작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은 지난 주 출간 3주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4주 연속 정상을 지킨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를 밀어낸 것. 엄마를> 살아온>
노 전 대통령이 1994년 펴낸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 도 추모 열기에 힘입어 베스트셀러 1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노 전 대통령이 "책을 읽을 수도 없"게 되기 전까지 가까이 두고 읽었다는 각종 사회과학 서적들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여보,>
각막을 기증한 김 추기경의 뒤를 잇는 장기기증 서약도 5만 명을 넘어섰다. 장기기증이 사회 이슈가 될 당시 반짝 늘었다가 이내 사그라지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따르면 3월 4,400명이던 서약자는 4월 6,000여명으로 늘었다.
죽은 자에 대한 대접이 남다른 한국 문화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예사롭지 않은 최근의 추모 신드롬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먼저 연모 신드롬 주인공들의 공통된 흡인력으로 '인간적인 리더십'을 꼽았다. '바보'로 불리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대통령, 모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 추기경. 이들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조옥라 서강대 교수는 "솔직하고 소박한데다 약자에 대한 배려 등 인간적 가치를 지향하던 이들의 죽음을 매개로 사회 구성원들이 그간 잊고 있었던 메시지를 읽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장 교수의 인간승리, 노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 모두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도, 쉽게 찾을 수도 없는 가치들"이라며 "대중들이 이들을 통해 (그런 가치를) 대리 충족하려는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회 지도층도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역설적 특수성'이 추모 열기를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인간적으로 다가서기 힘든 기존 엘리트와 달리 이들은 서민의 고통, 아픔을 자기 문제로 생각하고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면서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지키기 힘든 가치를 지향하던 이들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열병처럼 번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적 모델로 삼을 지도자의 부재가 사자에 대한 집착을 부른다는 지적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현실에서 지침이 될 역할을 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자들에 대한 상실감이 실제 이상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모 열기가 자칫 사회갈등을 악화하는 불씨가 되는 것을 막고 긍정적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흩어졌던 민심이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새로운 통합의 가치를 설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ajng@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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