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장 전날 저녁,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났다. 4주전 칼럼에서 '아무리 깽판을 쳐도, 대통령이 된 것으로 세상을 바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함없이 지지한다'고 소개한 그 친구다.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는 대뜸 "그 성질이 어디 가나"라고 퉁명스레 맞받았다. 이어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을 한 거지"라고 덧붙였다. 서운함이 배였으나, 그 사이 마음을 다스린 듯했다. 한 달 전쯤 "노통은 자살할지 몰라"라며 무심히 고개를 끄덕인 기억을 함께 떠올렸다. 우리는 소소한 아이들 걱정까지 나누다 자정 무렵에야 헤어졌다.
'냉정한 비판'에 미안함 느껴
국민장 다음 날, 어느 결혼식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 주변의 누구도 노 전 대통령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돌연한 서거를 놓고 부인이나 아이들과 다퉜다는 이들이 생각났다. 지난 정부 고위직을 지낸 다른 친구는 봉하마을까지 갔다가 서둘러 올라왔다며 수염이 시커먼 모습이었다. 그는 2군데 결혼식이 더 있다며 바삐 떠났다.
밤늦게 언론 사이트를 둘러보다 "책임 있는 지식인의 추도문은 엄정해야 한다"고 쓴 진보신문 칼럼에 눈길이 갔다. 거친 댓글이 숱하게 붙었다. 내 칼럼에는 북한 얘기나 쓸까, 잠시 용렬한 궁리를 했다.
국민장 중계를 거의 온종일 지켜봤다. 혼자 앉아 끼니도 거르며 추모 물결이 넘실대는 광경을 빠짐없이 보았다. 생전의 고인을 언급한 마지막 칼럼에서 '영웅 의식'과 '나르시시즘 정치'를 새삼 비판한 것이 미안했다. 그를 올바로 이해하고 정직하게 논평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몇 해전, 칼럼을 모아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제목의 책을 냈다. 대통령이 썼다는 '대연정 제안편지'가 너무 조잡하다고 비판한 칼럼의 선정적 제목을 출판사도 좋아했다. 진정 고상한 뜻으로 연정에 집착한다면, 이념과 지역과 계층 갈등을 중재하는 합리적 지성과 절제와 설득의 미덕부터 배우라는 내용이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국민 통합을 이루는 대통령 노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썼다. 대통령은>
그 글이 이제 와서 거슬렸다. DJ 집권 때는 일부러 너그러웠다. 오랜 한(恨)의 치유를 생각했고, 분단 벽을 넘는 시도를 지지했다. 이어 이회창 후보가 거센 변화 홍수에도 협소한 보수의 방주(方舟)에 안주하는 것을 딱하게 여겼으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았다. 갈갈이 찢긴 나라를 이끌 지도자의 면모가 없었다. 그 선입견 때문에 그에게 지나치게 냉정했을 수 있다.
내 나름으로는, 여느 대통령과 달리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는 인식이 냉정한 평가의 바탕이었다. 지난 역사의 필연성, 시대적 조건을 무시한 정체성 논란과 편협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용납하기 어려웠다. 보수의 과장된 퇴행은 꼴 사납지만, 앞선 세대가 역경에서 쌓은 역사를 지우고 새로 쓰려는 오만과 무모함은 한심했다. 사회적 공생의 틀 안에서 이념과 비전의 조화를 꾀하는 리더십이 아쉬웠다.
특히 개인과 나라의 구체적 생존 과제보다, 추상적이거나 허황된 도덕적 명분에 매달리는 것은 물정 모르는 만용이거나 현실의 실패를 숨기는 위선이라고 보았다. 언젠가 휴일 청와대 점심에 초대 받아 몇 시간 외교정책 소신을 피력하는 것을 옆 자리에서 경청했다. 진지한 열정을 느꼈으나, '386측근'의 식견을 담은 책을 읽으라며 주는 것에 절망했다. 그는 이념을 떠나 최고의 지혜와 역량을 널리 구하지 못해 현실의 벅찬 과제에 실패했다.
'노무현 상징'에 기대지 않아야
노 전 대통령이 홀연히 떠난 뒤, 뜻과 의지를 더욱 우러르는 국민이 많다. 그러나 그가 표방한 가치와 이상은 오래 전부터 우리사회가 함께 짊어진 과제이다. 고인이 된 그가 새삼 뭘 이룰 수 있을까. 그의 상징에 마냥 기대는 것은 저마다 감당해야 할 엄중한 책임을 죽은 이에게 미루는 것일 수 있다. 현실은 언제나 산 자의 몫이 아니던가.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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