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이 중국 인민해방군에 유혈진압된 지 4일로 20년을 맞는다. 하지만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은 아직도 역사의 베일에 가려 있다. 중국 공산당은 2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톈안먼 사태를 반 혁명 소요로 규정하고 정치ㆍ사회적 논의 자체를 금기로 여겼다.
이 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홍콩 이외의 중국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당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만든 톈안먼어머니회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은 톈안먼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및 희생자 명단공개,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보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중국 당국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에 대한 진실규명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재평가 요구가 철저히 차단돼 왔다.
그러나 20주년을 앞두고 최근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사회 회고록 '국가의 죄수'가 출간되면서 진실 규명과 재평가 작업이 그 어느 해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경제성장과 더불어 중국 국민의 의식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중국 공산당이 정치개혁과 민주화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톈안먼 사태에 대한 국내외 재평가 요구를 언제까지 묵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자오쯔양은 그의 저서에서 "대학생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무력 진압하기로 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결정은 불법"이라고 증언했다.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국내뉴스부 주임으로 재직했던 장완수(張萬舒)는 최근 펴낸 '역사의 대폭발'에서 당시 희생자가 민간인 731명, 군인 14명 등 총 727명에 이르며 당시 시위진압 군병력은 1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지만 하나씩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 시위주역 21명의 현주소는
20년 전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20대 초중반의 주역들은 아직도 당시의 민주화 열기를 잊지 않고 있다.
주역 가운데 한명인 슝(熊)옌(45ㆍ미군 소속 목사)은 2일 홍콩 코즈웨이베이 타임스퀘어에서 당시 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홍콩학생연맹 소속 대학생들을 만났다. '1989년 민주화운동을 복권하라'고 적은 플래카드와 흰색 머리띠를 두른 학생들을 만나 "내게 1989년의 봄은 어제처럼 생생하다"며 "중국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중국 당국이 당시 수배령을 내린 학생지도자 21명 중 서방에 망명한 인사는 류강(劉剛) 등 11명이다. 중국에는 10명이 남았는데 3명은 행방이 불확실하다.
톈안먼 시위를 주도한 막후 실력자 왕단(王丹)은 10년간 중국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올해 9월 대만 명문 국립정치대의 조교수로 임명될 예정이다. 98년 4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병 보석으로 석방된 그는 매년 6월 미국에서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해왔고 96, 97년 연속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
베이징지역 대학생연합회장으로 신장(新疆)위구르 출신인 우얼카이시(吾爾開希)는 프랑스와 미국에 유학한 뒤 해외중국민주전선을 결성해 민주화운동을 계속하다 대만에 정착, TV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 항쟁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던 왕웨이린(王維林)은 대만으로 피신해 현재 타이베이 고궁 박물관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여학생 지도자 차이링(柴玲)은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공산주의청년단 소속으로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왕쥔타오(王軍濤)는 91년 정부전복 음모 혐의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다 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 다니엘 벨 칭화대 교수의 또 다른 시각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중국 칭화(淸華)대에서 중국 유학의 정치ㆍ사회 철학을 강의하는 다니엘 벨(45ㆍ사진) 교수는 "온전히 영글지 않은 서양 민주주의에 대한 막연한 갈구"라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색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캐나다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철학 박사를 받았으며 미국 프린스턴대, 싱가포르국립대 樗?거쳐 2005년부터 칭화대 철학과에 재직중이다. '중국의 새로운 유학:변화하는 중국 사회에서의 정치학과 일상생활' '자유민주주의 그 이후:동아시아의 정치사상사' 등의 저서를 냈다.
_'톈안먼 사태' 에 대한 중국 지식인의 평가는 어떤가.
"역사적 의미, 희생정신은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대한 분노가 지나치게 과장되는 것 역시 경계한다. 중국 지식인은 서양 자유민주주의를 역사의 종점으로 보지 않는다. 20년 전 사건이 서구 가치에 경도되면서 나왔다는 평가도 내린다. 전통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와 전승이 지금 필요하다."
_전통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정신이란.
"중국은 최고 지도자는 물론 기업인, 초등학생까지 문화대혁명으로 단절된 전통을 잇는데 혈안이 돼있다. 유교적 콘텐츠는 사회안전망 구축 등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양식 인권보다 충성, 사회책임감을 앞세우는 유교에 대한 연구는 중국에서 착근되지 않은 서양 민주주의와 차별화되고 있다."
_중국 정부는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사법권을 독립시켜야 한다. 심각한 부패문제를 해소하는 규제기관도 필요하다. 지난 30년간 경제발전을 실현한 중국이 향후 30년 동안에는 정치ㆍ사회 체제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_사태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 요구가 높다.
"재평가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당시 활동했던 이들이 생존해있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베이징=장학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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