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삼남 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북한이 외교 전문을 통해 해외공관에 통지한 것은 그의 3대 세습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보 당국과 전문가들은 앞으로 실제 후계자로 자리잡기 까지는 여러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군사 도발 움직임도 모두 후계 체제 구축을 위한 내부 결속 다지기와 권부의 주도권 다툼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1일 "지난해 8월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 이후 평양에선 후계 체제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최대 관심이었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도 이 때문에 정운의 3대 세습설 가정 아래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데 중점을 둬 왔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최근까지 "분위기는 사실상 정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전했었다. 그런데 1일 북한이 해외공관에 정운 후계자 내정 사실을 전파한 게 확인됨으로써 후계자설은 굳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운이 가야 할 길은 멀다. 1970년대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승계할 때와는 천양지차의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열악하지 않았고 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충성도도 높았다. 또 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 조직비서로서 권력 엘리트에 대한 인사 통제권을 갖고 있었고, 주체사상을 정립하는 등 성과도 냈다. 그러나 정운의 경우 김 위원장보다 경력이나 능력이 일천하고, 북한 내부 상황도 당시에 비해서는 허약하다.
따라서 북한 권부에서는 정운을 후계자로 띄우기 위한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다. 4월 국방위원회 개편과 함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오극렬 작전부장 등을 중심으로 일련의 무력 시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도 이 같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물론 현철해 이명수 대장 등 김 위원장의 군부 핵심 측근들의 충성 경쟁도 북한의 강경 도발에 한 몫 했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영변 핵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하는 등 핵 보유국 주장을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이 정운과 북한 체제 생존을 위해 마지막 선물로 핵 보유 카드를 남겨 주려는 생각이 강하고, 이런 의도는 군부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다. 이는 결국 "북한이 당분간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정부 당국자)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달 시작한 150일 투쟁을 통해 10월까지 체제 내 긴장도를 높이고, 여기서 성과가 생긴다면 이를 정운의 업적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정운이 2012년 정도까지 계속해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북한은 혼합형 집단 지도체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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