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탁구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라.'
3일 중국 쑤저우에서 개막하는 중국오픈에서 내년 아시안게임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국 탁구에 주어진 지상과제다. 지난달 세계탁구선수권(개인전)에서 중국은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5개 종목에 걸린 금메달뿐 아니라 20개의 메달 가운데 17개나 독식하며 더욱 강력해진 '만리장성'의 파워를 과시했다.
1970년대 '이질 러버'를 들고 나와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중국은 90년대 말부터 셰이크전형을 개량한 중국식 펜홀더 '이면타법'을 등장시키며 30년 넘게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80년대 중국의 대항마였던 한국의 존재감은 옅어지고 있다. 무엇이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 이면타법의 희소성
중국 탁구의 힘은 3,000만명이 넘는 넓은 선수층에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중국 남자탁구가 자랑하는 세계랭킹 1위 왕하오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린은 이면타법의 고수들이다.
지난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마린의 이면타법에 당해 4강 진출에 실패한 주세혁(삼성생명)은 이면타법의 1인자 왕하오를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펜홀더지만 라켓의 뒷면도 사용하는 이면타법은 90년대 초반 현 중국대표팀 감독인 류궈량이 틀을 잡은 뒤 마린을 거쳐 왕하오가 완성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야구로 치자면 이면타법의 백드라이브는 슬라이더다.
손가락으로 돌려서 전진이 아니라 휘어서 들어오기 때문에 받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마린이 포핸드 공격을 주로 하는 데 반해 왕하오는 백핸드도 똑같이 공격루트로 삼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무엇보다 눈에 익지 않은 스타일이다 보니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이면타법을 구사하는 선수는 왼손의 이정삼, 유훈석(중원고) 정도밖에 없다. 그것도 중국에서 단기로 어깨너머로 배운 수준이다.
유남규 남자대표팀 감독은 "이면타법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셰이크핸드 전형으로만 만들지 말고 다양한 전형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자 연수 등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 탁구도 과학이다
중국은 매년 수 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해왔다. 중국의 이질러버도 기술개발의 결실이다. 공의 회전이나 속도는 러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러버를 양면에 붙이는 이질러버를 쓰면 더 복잡한 공 배합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식 러버를 사용하는 뒷면과 달리 앞면엔 자국 기술로 개발한 특수러버를 사용하면서 철저한 비밀유지를 하고 있다. 중국식 러버는 20~30바퀴 가량 더 회전이 걸리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 경기 초반 적응하지 못해 주도권을 빼앗기기 쉽다.
이면타법을 구사하는 이정삼과 유훈석이 사용하는 이질러버도 중국 국가대표용이 아니라 시중 판매용으로 다르다.
2,000명이 채 안 되는 빈약한 선수층에, 일본에서 수입한 러버에 의존하는 한국 탁구로선 따라가기 바쁠 수밖에 없다. 김기택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중국 탁구가 최강인 이유는 이면타법처럼 지도자와 선수들이 새로운 방법을 연구, 개발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기존 기술의 연구는 물론, 새로운 시도와 개발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프로화의 힘
그러나 중국 탁구의 진정한 힘은 이면타법도, 이질러버도 아니라 '프로화'라고 한국 남녀대표팀을 이끄는 유남규 감독과 현정화 감독이 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 탁구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프로화되면서 붐업에 성공했고, 매년 6월부터 3개월간 프로리그를 통해 강도 높은 실력 향상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유 감독은 "왕하오 등 특급 스타들의 연수입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30억~40억원의 가치"라면서 "프로화를 통해 자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차단하고, 수준급 해외 스타들은 자국리그로 불러 들여 공략법을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돈벌이가 되다 보니 탁구는 중국에서 규모를 갖춘 전문 시장으로 발전했다. 중국 탁구는 철저한 클럽시스템이다. 초ㆍ중ㆍ고 각각 다른 지도자로부터 배워야 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선 대표팀 선수가 되기 전까지 탁구클럽의 지도자로부터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전형별뿐만 아니라 백드라이브, 포핸드드라이브 등 파트별 전문 지도자가 각각 기본기를 가르칠 정도로 전문성도 높다.
한국 탁구가 지난해 슈퍼리그를 부활시키며 프로화 가능성을 타진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 감독은 "우리도 자국 선수를 보호하고 당근과 채찍을 섞어가며 실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그런 리그가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미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