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흥행몰이 나선 '마더' 이니셜로 풀어보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흥행몰이 나선 '마더' 이니셜로 풀어보니

입력
2009.06.03 00:52
0 0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가 5월 31일까지 104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을 모았다. 개봉 첫 주 흥행 성적으로는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과 맞대결해 거둔 성과라 의미가 더욱 크다.

'마더'는 결과를 알고 보면 맥이 빠질 스릴러.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몇 개의 힌트를 알면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흥행몰이에 나선 '마더'를 영어 제목 머리 글자로 풀어봤다.

■ Murder(살인)

'마더'에는 두 건의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봉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 '괴물'과 달리 스크린 밖으로 사라지는 시체의 수가 비교적 적다. 그러나 살인의 흉폭함과 그 묘사는 눈을 질끈 감게 할 정도로 강도 높다. 영화는 살인의 원인을 찾고 살인자의 신원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살인자를 뒤따라 가며 쫓는 전통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살인의 추억'과 차별화 된다.

살인이 주요 소재임에도 제목이 영어 '머더'를 연상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봉 감독은 부인한다. 그는 "가장 원초적인 제목 '엄마'를 쓰고 싶었지만 같은 제목의 한국영화가 있어 불가피하게 포기했다"고 말했다.

■ Odd(기이한)

'마더'는 낯설다. 특히 봉 감독의 작가적 기질보다 상업성을 높게 평가하는 그의 열성 팬들에게 '마더'는 기이한 영화다. 스크린 곳곳에 영화적 재치와 재미를 매설해 놓았던 전작과 결을 달리한다.

잔재주를 최대한 아껴 모은 힘으로 결정적 한방을 터뜨린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던 봉 감독의 유머도 블랙으로 일관한다. "실망했다",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는 관객 반응들이 나오는 이유다.

■ Thrill(스릴)

'마더'는 관객들을 불친절하게 대하고, 상식을 배신함으로써 스릴을 잉태한다. 엄마(김혜자)가 어리숙한 아들 도준(원빈)과 홀로 살게 된 사연 등 주요 인물의 과거는 봉 감독의 전작과 달리 애써 소개되지 않는다. 인물들의 과거가 지워진 자리는 예기치 못했던 긴장과 전율이 채운다.

숭고하고 절대적인 사랑으로 여겨지는 모성애에 대한 상식 파괴도 서스펜스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특히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로 묘사되는 도준의 아리송한 마지막 대사가 심장을 죈다. "이런 거 막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 엄마는…" '식스센스'급 반전까진 아니지만 며칠이고 머리 속에서 무한 반복되며 몸을 오싹하게 할 말이다.

■ Hyeja(김혜자)

'마더'는 "김혜자의 감춰진 어둠과 광기를 묘사하고 싶어 2004년부터 기획하고 준비한"(봉 감독) 영화이다. 출발선부터 김혜자하고 함께 한 것. 그래서일까. 그의 연기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뭉갠다.

"내 아들은 (살인자가) 아니야!", "우리 아들 발톱의 때만도 못한 XX" 등의 절규를 외치며 아들을 구해내려는 광기 어린 모성은 그의 몸을 빌어 진정한 생명력을 얻는다.

웃을 듯 울 듯한 표정이 교차하다 끝내 구겨지고 마는 김혜자의 얼굴 앞에 허물어지지 않을 관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여배우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 나타난 것이냐"는 칸영화제의 반응이 당연하게 다가온다.

■ Erotic(에로틱)?

정사 장면은 딱 한번 등장하지만 '마더'엔 시종 성적 긴장감이 흐른다. "나 여자랑 잤어… 엄마"라는 덜 떨어진 도준의 대사가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복잡다단한 성적 관계로 이어져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엄마와 도준, 도준의 친구인 진태(진구)와 도준 엄마의 관계도 묘하다. 봉 감독은 "섹스를 하는 사람과 섹스로부터 차단된 사람으로 나눠 영화를 봐도 재미있다. 사건 전개도 이와 맞물린다. 모자간의 사연은 상상에 맡긴다"고 밝혔다.

■ Relation(인간 관계)

'마더'는 익명성이 독소처럼 번진 대도시를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 도준을 잡아들이는 형사는 그저 동네 사람 제문이고, 교도소 면회장을 지키는 교도관도 이웃인 종도 삼촌이다. 옆집 숟가락 개수도 알만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방 공동체가 살인과 원조교제라는 끔찍하고 음습한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만한 사람들끼리 정작 중요한 사실은 모르거나 쉬쉬하는 장면은 긴장감과 공포를 더욱 배양한다. 영화 속 진태는 엄마에게 말한다. "아무튼 이 동네 자체가 다 이상해. 그러니까 아무도 믿지마…."

라제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