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설립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자율고가 사실상 '변형 특수목적고'로서 새 정부 자율과 경쟁 교육을 구현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일선 학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율고 설립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전환을 희망한 학교들의 재정 여건이 설립 기준에 크게 미달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자율고 정책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전국교직원노조는 2006~2007학년도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지역에서 자율고 전환을 신청한 전체 33개 고교 중 24개교(72.7%)의 재정자립도가 자율고 설립 기준인 법인전입금 비율 5%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일 밝혔다.
2개 학년도 평균으로 법인전입금 기준을 채운 학교는 9개교(27.3%)에 불과했고, 1개 학년도라도 5%를 넘긴 학교는 12개교(36.4%)에 그쳤다. 특히 영일고, 대성고, 충암고 등 법인전입금 비율(2개 학년도 평균)이 1%에도 미치지 못한 학교들도 8곳이나 됐다.
전교조 관계자는 "이들 학교는 재단이 당연히 부담해야 할 돈도 내지 못해 국민의 혈세로 근근히 버텨왔다"며 "자율고로 지정돼도 부실 운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예상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법인전입금 기준은 자율고 설립을 위한 기본 전제인 만큼 각 학교의 내년도 수업료 및 예산계획서를 받아 철저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해 상당수 학교들이 자율고 선정 과정에서 중도 탈락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자율고 신청을 위한 학내의 의견수렴 절차가 비민주적으로 진행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A고의 경우 학교운영위원회(학운
위) 심의는커녕 교사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교장이 일부 교사에게 서류 준비를 지시해 신청을 강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B고는 교직원 투표에서 절대 다수가 반대하고 학운위가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독단적으로 결정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현재 자율고 신청 절차를 진행 중인 다른 시ㆍ도교육청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크고 작은 잡음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고 설립에 대한 반대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전교조 등 67개 시민ㆍ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자율형사립고 대응 공동행동'은 이날 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고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율고는 학교 서열화 체제를 고착화시켜 '현대판 학교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 낼 것"이라며 "범국민서명운동과 전국 학부모 결의대회 등을 통해 자율고 백지화 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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