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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설 자리

입력
2009.06.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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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전 총장과 교수들은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문화관광부 앞에서는 학생들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제발 우리를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라" 고. 그들이 보기에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인적 구성, 조직,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론학과도, 예술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 교육도, 전공과 무관한 교수의 영입도 다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화관광부의 시각은 다르다. 1년에 정부 예산 300억원씩을 갖다 쓰는 국립 한예종이 본래의 목적에서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 있다는 것이다. 굳이 감사를 통해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황지우 전 총장의 개인적인 비리를 찾아내 면직한 이유도 한예종을 제 자리로 돌려 놓기 위한 포석이었다.

총장 면직사태까지 빚은 갈등

왜 굳이 한예종을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혹자는 문화미래포럼으로 대변되는 보수 예술인들이 주장하는 '좌파 예술권력의 온상'으로 점 찍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그래서 이념교체를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이 이념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정당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위원장, 국립미술관장의 강제 교체에서 풍긴 또 다른 이념화를 감안한 분석이다.

그런 의도가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한예종 인적 구성을 보면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지난 10년을 보내면서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문화연대 같은 진보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한예종 교수가 되어서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누가 봐도 '정치적 배려'라고 할 만한, 전공도 다르고, 뚜렷한 활동도 없는 엉뚱한 사람도 있다. 특정 학교, 학과출신이 유난히 많은 것도 개운치 않다.

더 큰 문제는 그들로 인해 학교의 조직과 운영, 방향까지 달라졌다는 데 있다. 1993년 음악원 영상원 등 3개 원으로 출발한 한예종은 집단적 예술교육을 하는 일반 대학과 달리, 예술 영재를 위한 개인 실기교육의 장이었다. 예술 분야만큼은 매년 수 백억원의 막대한 국민세금을 투자해서라도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그들을 발굴하고 키워보자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예종은 정체성을 조금씩 잃어갔다. '영재학교'가 아닌 예술'대학'이 되고 싶어 몸집을 늘리기에 집착했다. 다른 대학, 심지어 한예종 안에서의 중복을 무시하고 6개의 원으로 규모를 늘리고는, 영재 아닌 영재들까지 불러들였다. 이론학과 개설도 그렇다. 필요한 이론교육은 외부강사를 초청해 실시하도록 해놓았지만, 별도의 학과를 만들어 교수들을 채용하고 학생들을 뽑았다.

이 모든 것이 한예종의 욕심과 비정상적 인사와 결코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일정 부분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통섭교육이 비판을 받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예종이 본래 목적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구조조정과 인적 쇄신은 필요해 보인다.

교육환경과 방향이 뒤틀렸다면, 정권의 비호와 집단이기주의 아래에서 입시와 교수채용에서 비리가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일반 대학들의 예술영재교육에 대한 인식과 태도, 환경도 많이 달라진 만큼 한예종의 역할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반성 없는 밥그릇 싸움 꼴불견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한예종은 기업이 아니라 학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재들이 그곳에서 위대한 예술가를 꿈꾸며 순수한 열정을 쏟고 있다. 누구도 그들의 꿈과 미래를 함부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말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성급하고 일방적인 정부, 한풀이 하듯 공격해대는 보수예술인들, 질투심에 사로잡힌 전국 예술대학교수들, 반성 없는 오직 제 밥그릇 지키기에 골몰하는 한예종의 교수들, 누구에게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기 싫어 따로 기자회견하고, 토론하는 소통 단절의 그들 앞에서 "학교 주인은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라는 학생들의 말이 공허할 뿐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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