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복(復), 복(復), 복(復)."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씨가 노 전 대통령의 혼을 부르며 노제(路祭)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초혼(招魂) 의식은 굳이 필요 없었다. 29일 영결식이 거행된 경복궁 앞에서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 그리고 서울역 광장에 이르기까지 온 거리를 노랗게 물들인 슬픔의 물결 한 가운데 '바보 노무현'은 오롯이 살아 있었다.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걸까. 이날 오후 12시30분께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까지 1㎞도 채 안 되는 길을 오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 카메라 셔터를 연방 눌러대고, 주먹을 불끈 쥐고 "노무현"을 외치는가 하면,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도 했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오후 1시20분께 고인의 애창곡 '상록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로 1.1m, 세로 1.4m 크기의 영정을 모신 무개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섰다. '강물처럼 살다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 등이 적힌 오색 만장(輓章) 2,000여개가 장례 행렬 앞에서 고인의 넋을 인도했다.
광장 일대에 모인 수만 명의 시민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일어나 고인을 맞았다. 강원 원주에서 온 유모(54)씨는 "이제 정말 다시 뵐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내 가슴 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으로 믿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이 아니구나."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 소리'를 하며 운구차를 한 바퀴 돌았다.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 내렸어요. 고마워요.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국립무용단의 진혼무와 함께 안도현 시인이 조시(弔詩)를 낭독했다. 하늘엔 시민들이 날린 노란 풍선이 가득했다.
정시아 시인의 고인 유서 낭독에 이어, 노제 제관(祭官)을 맡은 도종환 시인이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고 외치자 시민들은 "사랑합니다"를 연호하며 흐느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기 위해 학교에서 외출증을 받아왔다는 고등학생 황유림(15)양은 "그 분의 업적은 잘 모르지만 짊어졌던 짐을 모두 놓고 편하게 잠드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 서울광장에서는 가수 안치환, 양희은씨등의 추모 공연이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 모자를 쓰고 손에는 노란 풍선을 든 채 이날 아침 일찍부터 서울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한 시민들은 추모의 노래가 이어지자, 어깨를 들썩였다.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씨가 "우리 가슴 속에 큰 비석을 하나 세우자"고 호소하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노제 막바지, 고인의 애창곡이었던 '사랑으로'가 흘러나오자 광장은 눈물 바다를 이뤘다. 인천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김지영(29ㆍ여)씨는 "이승에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흐느꼈다. 애써 슬픔을 참고 있던 권양숙 여사는 고개를 떨궜고,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제가 끝난 뒤에도 시민들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좀처럼 열어주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은 손을 흔들어 작별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큰 듯 고인이 누운 운구차에 매달리거나 운구차 앞에 드러누워 오열했다. 시민들이 날린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 비행기가 쉴 새 없이 운구 행렬에 날아들어 오후 3시께 서울역 광장에 도착할 즈음엔 무개차 안과 운구차 지붕 위에 수북이 쌓였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노란 추모 인파의 배웅을 받으며 '바보 노무현'은 이승과 마지막 이별을 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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