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원을 증여 받아 쥐꼬리만한 세금 내고 200조원의 그룹경영권을 장악했다." 삼성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경영권을 확보한 것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비판하는 핵심 내용이다. 이 전무가 1994년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60억8,000만원을 증여 받아 96년 그룹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헐값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지배주주가 됐다는 것이다. 헌법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국민정서법'도 삼성의 사실상 세금 없는 경영권 대물림에 대해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증여 받을 당시 그가 낸 증여세는 16억원에 불과했다.
▦이 전무가 그룹지배권을 확보한 방식은 2세 승계를 추진하는 재벌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비상장 계열사가 2세들에게 헐값으로 주식을 발행해 부(富)를 이전하거나, 경영권을 넘겨주는 수법이다. 이 전무는 60억원의 종자돈으로 에버랜드 주식을 싼값에 사들여 1대주주(25.1%)로 올라섰다. 에버랜드는 그룹 자금 줄인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이 전무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형태의 핵심고리를 장악한 셈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낸 세금은 최초의 증여세를 포함해 100억원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법원이 에버랜드 CB헐값 발행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한 것을 계기로 재벌의 경영권 승계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시민단체는 사법부가 삼성의 불법 경영 승계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며 법치주의가 실종됐다고 비판했다. 경제민주화에 앞장서온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법원이 10여년간 뜨거운 쟁점이 돼온 삼성의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내린 최종 판결을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법치주의 부정이다. 삼성의 비상장사를 통한 부의 대물림은 편법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지만 당시 법규상 불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속ㆍ증여세는 법에 규정된 것만 과세하는 열거주의가 적용됐다는 점에서 이 전무의 증여세가 미미했어도 중과세할 근거가 없었다. 모든 부의 세습에 대해 과세할 수 있는 포괄주의는 참여정부 시절 도입됐다. 삼성사태는 불법 승계가 어렵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데 기여한 셈이다. 현대차가 삼성식 수법을 썼다가 총수 구속 등 곤욕을 치른 반면, 신세계는 1조원의 상속세를 내고 떳떳하게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선언했다. 재벌들은 경영권 승계가 실정법은 물론 국민정서법에도 부합하게 이뤄지도록 투명경영, 윤리경영에 더욱 힘써야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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