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렇게 인기가 좋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늘에서 자신에 대한 추모열기를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서거 후 500만명 가까이 분향소를 찾았다니 국민 열 명 중 한 명은 참여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고인은 재임 기간 중 썩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퇴임 이후 국민적 평가는 호전되었으나 최근의 검찰수사 이후 그나마 있던 좋은 평가는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서거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특권, 지역주의,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했던 그에 대한 국민적 평가와 지지는 이제 하늘에 닿고 있다.
이 대통령이 새겨야 할 교훈
그가 받은 인간적 고뇌와 고통에 대한 동정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가는 길에 꽃을 뿌리는 마음으로 좋은 평가를 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 뜨거운 추모열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왜 우리 국민은 갑자기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대통령을 평가할 때에는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사용한다. 머리는 재임기간 중의 업적을 바탕으로, 가슴은 사람에 대한 감동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평가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의 재임기간 중 업적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린 것은 전혀 없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려 했지만 빈곤층의 삶은 전 세계적 소득분배 악화 속에서 더 어려워졌다. 지역주의와 싸웠으나 열린우리당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권위주의 타파에 노력했으나 권위 상실을 지적 받은 경우가 더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서거하는 방식이 극적이라고 해서 재임 중 업적에 대한 평가가 좋아질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져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자신에게 대의명분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은 그의 서거를 통해 나라를 위해 잘 해보려고 노력한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감동한 것이다. 다시 말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바꾼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감동을 만든 것이다. 역시 그는 재임 기간 중이나 퇴임 후나 우리의 머리보다는 감성에 호소한 지도자였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의 머리에 호소하며 업적으로 평가 받으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민이 업적을 체감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5년 내에 업적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다. 또 업적에 대한 평가는 늘 찬반으로 갈린다. 이에 비해 '바보' 노무현의 서거는 국민적 감동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업적과 감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 대통령도 경제를 살리고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업적을 내려 할수록 국민 감동은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밀어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으며 일을 하면 찬성은 못 얻어도 감동은 줄 수 있다. 지금까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속도전이 불가피했던 점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일방적인 홍보와 이벤트를 강화하라는 뜻이 아니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수렴하면서 업적을 추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을 불필요한 비용으로 보는 한 국민을 감동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6월 국회부터 이를 보여야 한다.
국민 감동과 소통의 정치를
우리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이나 발언에 대해 '국면 돌파용', '포퓰리즘', '거친 언사'라는 이유로 폄하했었다. 그 노력이 모두 진정이었다는 점을 그가 몸을 던지고 나서야 인정하였다. 우리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헐뜯고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도 국민을 감동시켜 지지를 이끌었다면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노무현이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재임기간 중 좀더 지지를 보낼 걸…이런 후회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미래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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