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내수 부양책에 따른 수요 증가와 환율 효과로 호황을 누려온 석유화학업계가 최근 잇단 악재로 휘청거리고 있다. 태양전지의 기초 소재인 폴리실리콘은 공급 초과에 따른 가격 폭락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고, 중국 정부가 갈수록 해당 품목을 넓혀가고 있는 반덤핑 관세 부과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폴리실리콘 공급 과잉으로 가격 폭락 전망
지난해 원유 가격이 고공 행진하면서 이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태양광의 인기가 치솟았고 폴리실리콘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당 400달러까지 올랐던 폴리실리콘 현물 가격이 지금은 6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가격 하락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 미국 투자은행 바클레이 캐피털은 '2009 태양에너지 핸드북'에서 지난해 ㎏당 80달러 선이었던 폴리실리콘 가격이 올해 60달러, 내년엔 40달러로 내려갈 것으로 관측했다.
태양전지 기술의 발전으로 지난해 출력 1W(와트)를 만들기 위해 폴리실리콘 9g이 필요했던 반면, 올해는 8g, 내년에는 7g으로 소모량이 적어지고 폴리실리콘 수요도 그 만큼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자 OCI(옛 동양제철화학)는 제3공장 완공을 계획보다 늦추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최근 폴리실리콘 시장 진출 계획을 밝힌 LG화학과 한화석유화학은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삼성석유화학도 폴리실리콘 시장 진출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2조2,500억원을 투입한 OCI는 연간 1만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제2공장을 6월부터 운영할 예정이며, 연간 1만톤 규모의 제3공장도 짓고 있다. 2,3공장이 완공되고 현재 진행 중인 1공장 증설이 끝나면 연간 2만6,500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웅진 폴리실리콘과 KCC도 각각 경북 상주(1만톤)와 충남 대죽(6,000톤)에 생산 시설을 짓고 있다. KCC는 연간 생산 규모를 1만8,000톤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 같은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국내 폴리실리콘 생산 규모는 현재 5,000톤에서 5만4,500톤으로 10배 이상 늘어난다. 그만큼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태양광 발전 사업은 해외 선진 업체와 기술 격차가 크고 전문 인력도 턱 없이 모자란다"면서 "태양광 산업 기반과 연관 산업이 모두 취약한 상태에서 소재만 국산화한다고 금방 수익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한국산 유화 제품에 반덤핑 관세 부과
국내 유화 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보호주의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한국과 태국 기업이 수출하는 디메틸사이클로실록산(섬유, 자동차, 전자 분야에 쓰이는 실리콘 중간재)을 조사한 결과 중국 기업들의 피해가 심각했다"며 "향후 5년 동안 해당 제품에 5.4~25.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이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KCC는 반덤핑 조사에 대응조차 하지 않아 25.1%의 고율 관세를 적용 받았다. KCC의 올해 예상 매출액 2,340억원 중 반덤핑 관세의 영향을 받는 금액은 1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업계는 중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조치가 우리 주력 화학 제품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올해 초부터 삼성석유화학, 삼남석유화학, 태광산업, KP케미칼, SK유화, 효성 등 폴리에스터 원료 테페프탈릭산(TPA) 6개 제조업체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업체의 중국 TPA 수출액은 28억달러로, 전체 석유화학제품 중국 수출액(322억 달러)의 8.6%나 된다. 국내 업체들은 TPA 수출량의 95%를 중국으로 보내고 있는데, 10월 반덤핑 조사 결과에 따라선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폴리에틸렌(PP)과 폴리프로필렌(PE)에 대한 반덤핑 조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 들어 두 품목이 공급 부족을 겪고 있어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중국 업계의 요청에 따라 중국 정부가 반덤핑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도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 석유화학시장의 수급 및 경쟁 구도, 수출 환경 등이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내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을 높이고 중국만 기댈 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수출 선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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