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주주배정' 방식의 전환사채(CB) 발행이었다는 점에 주목,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선고로 향후 다른 기업들이 삼성그룹의 수법을 차용해 경영권을 편법 승계해도 처벌하기 어렵게 됐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대법원 선고의 핵심은 이 같은 사안에서 제3자 배정 방식이었을 경우 배임에 해당하지만 주주배정 방식이었을 경우에는 무죄라는 부분이다. 에버랜드는 기존 주주들에게 인수권을 우선 부여(주주배정 방식)했고 형식상 이들이 스스로 인수권을 포기한 뒤 제3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인수한 만큼 무죄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편법 CB발행'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설사 그렇다 해도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일 뿐, 회사의 이익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는'주주 손해설'의 입장을 취했다.
결국'외형만 주주배정 방식일 뿐, 실질적으로는 제3자 배정방식'이라는 조준웅 특별검사나 허태학ㆍ박노빈 전 사장 사건의 1,2심 재판부의 판단을 배척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그러나 이번 판결이 편법 경영권 승계에 길을 터 줬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선고 결과에 반대한 대법관들이 5명에 이른다는 점은 대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만만치 않았다는 방증이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기본적으로 하급심 재판부의 판단에 동의하면서"주주에게 배정된 CB와 실권 후 제3자에게 배정된 CB를 '동일한 기회에 발행된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라고 반박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대법원이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에 대해선 "제3자 배정방식으로 이뤄진 게 분명하다"며 항소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고 유죄 취지의 선고를 한 부분이다. 불공정한 가격으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것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이며 이사로서의 임무 위배 행위, 즉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관심은 파기환송심을 맡게 될 서울고법이 배임액수를 얼마로 특정할 것이냐에 모아진다. 배임액수가 50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게 돼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공소시효가 남아있어 처벌할 수 있지만, 그에 못 미치면 형법상 배임으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돼 처벌할 수 없다.
서울고법이 보수적 판단을 해 액수를 낮게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지만, 대법원이 내부적으로 SDS BW의 적정가격을 상당한 액수로 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만일 서울고법이 배임액수를 50억원 이상으로 산정할 경우 이 전 회장은 실질적인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어 '사실상의 최종심'인 파기환송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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