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아직-나희덕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에도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 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와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 어둠은 어째서 매혹적인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은 꿈과 비밀의 바탕색이다. 우주는 왜 매혹적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 눈에 보이는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으므로, 우주는 우리의 꿈을 부풀게 하고 비밀의 화원으로 이어지는 샛길들을 상상하게 한다. 아직 모르는 미지의 영역은 결여의 장소가 아니라 생산의 자궁이다. 모르는 것이 없을 때 인간의 영혼은 가장 빈곤하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고양될 때 우리는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시인의 노랫소리 들린다.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그리고 별은 어둠의, 어둠의….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ㆍ나희덕 1966년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등. 김수영문학상(1999), 소월시문학상(2007) 등 수상. 야생사과> 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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