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때보다 힘겨웠던 1주일을 보내고 맞은 주말, 새롭게 살아갈 힘과 희망이 필요했던 걸까. 지난달 28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행복을 그린 화가 - 르누아르'전에는 30, 31일 이틀 동안 1만여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일반적으로는 6대 4 정도로 토요일 관객이 더 많은 게 보통인데, 르누아르전의 첫 주말은 특이하게 이틀 동안의 관람객 수가 5,000여명씩으로 거의 같았다.
주말 전시장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과 20~30대 젊은이들이 많았고,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의 뒷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다정하게 팔짱을 낀 모녀,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 어깨를 맞대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혼자서 작품 감상에 열중하고 있는 노신사….
관람객들은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걷어내고, 대신 행복에 대한 약속을 가득 채운 르누아르의 작품 속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들 도윤(11)군과 오디오 가이드를 한 쪽씩 나눠끼고 작품을 감상하던 채성훈(37)씨는 "르누아르 회고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미술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꼭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런 전시는 흔치 않으니까 서둘러 나왔다"고 말했다.
도윤군은 진지한 표정으로 "르누아르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가장 좋았다"는 나름의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고모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정난희(23)씨는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도 르누아르의 작품을 봤지만,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보니 또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며 "소박한 삶의 모습에서 묻어나오는 평화와 안락한 느낌이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한 공간에서 르누아르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 미술관 전시보다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화가 르누아르를 보기 위한 외국인 관람객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졌다. 31일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은 미국인 알렉시스 테렐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르누아르 그림 복제본이 걸려있어서 각별한 추억이 있다"며 "직접 와서 보니 화려한 색채의 표현이 멋지다"고 감탄했다.
남편 매트 테렐씨는 "미국에서도 이런 전시는 본 적이 없다"면서 "'시골무도회' 속 여인의 눈이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일본인 관람객 한 명은 '그네'와 '시골무도회'가 전시장 벽에 나란히 걸린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 작품들이 정말 진품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전시장 중 가장 붐비는 곳은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이 대거 걸린 '일상의 행복' 섹션이었지만 관객들마다 섹션별로 뚜렷한 선호를 드러내기도 했다. 회사원 최수연(30)씨는 "3층의 '욕녀(浴녀)와 누드' 섹션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르누아르가 말년에 류머티즘으로 손이 마비됐다고 들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저렇게 풍요롭고 환한 이상적 세계를 담아내고자 한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는 것이다.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전시는 통상 오후 2~5시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린다. 주말은 오후 8시, 평일은 직장인 관객을 위해 오후 9시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쾌적한 환경에서 차분하게 전시를 즐기려면 늦은 시간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티켓 구매는 폐관 40분 전까지 가능하다. 우선 도슨트의 해설이나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설명을 들은 후, 다시 한번 전시실을 돌며 나만의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게 관람의 정석이다. 평일 오전 10시30분에는 어린이를 위한 해설이 진행된다.
큐레이터 이혜민씨는 "오르세, 오랑주리미술관 등에 걸려있던 유명 작품이 먼저 눈에 띄겠지만, 개인소장작 중에도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면서 "개인소장작은 앞으로 영원히 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만큼 꼭 챙겨보시기를 바란다"고 귀띔했다.
관람료는 8,000~1만2,000원. GS칼텍스 보너스카드를 가져오면 포인트 차감없이 4명까지 1,000원을 할인해준다. 포인트를 사용하면 3,000원 할인과 오디오 가이드 대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관람문의 1577-8968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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