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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추락하는 보수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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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추락하는 보수세력

입력
2009.06.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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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고통이 너무 크다", "원망하지 마라"는 구절을 두고두고 되새겨 본다. 국민적 애도를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는지,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또렷이 보이는 것은 한국 보수세력의 현저한 추락세이다.

무릇 보수라면, 공동체를 위한 용맹, 절제, 관용의 덕을 갖춰야 한다. 고사에는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이 즐비하다.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조(趙)의 염파(廉頗)라는 명장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제(齊)를 크게 격파하여 용맹을 떨쳤으며 최고 관직에 올랐다.

'잃어 버린 10년' 인식이 문제

그런데 염파의 자부심을 무너뜨린 이가 나타났다. 인상여(藺相如)는 외교에 공을 세워 출세가도를 달렸고 염파의 윗자리에 앉게 되었다. 염파는 치욕을 참을 수 없었다. 입과 혀끝으로 야전의 공을 능가한다는 것이 불공평하게 여겨졌다. 더욱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인상여가 환관의 가신이라는 비천한 출신이었다는 점이었다. 출생을 따지는 것이 과거에도 지금에도 인지상정이기는 하다. 그러니 빈농 출신에 상고 학력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이에 대한 이 땅의 엘리트층의 불편한 심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의 이야기는 또 다르게 전개된다. 인상여는 염파가 나타나면 숨어서 그와는 석차를 다투려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운다면 두 쪽 다 쓰러지기 마련이다. 국가의 위급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다." 이 말을 듣고 염파는 웃옷을 벗어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의 집 앞에서 사죄했다. 이후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고 함께 나라를 지켰다.

지금 한국에서는 어떤가? 보수세력은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에 기반하여 사회를 안정시키려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집권세력은 자신의 가치에 기반하여 통합의 폭을 정하고 제도를 안정화하는 데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로 집권한 세력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송두리째 부정했다. 보수의 가치에 입각한 포용을 내세우는 대신 기회주의자들에게 칼을 넘겨 준 셈이다.

사령부의 명령은 아예 없었을 가능성이 많다.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권력기관들이 무절제하게 전직 대통령을 벼랑으로 몰아가는 식으로 상황이 진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 보수세력, 정권의 이익을 사려 깊게 고려했다기보다는 기관, 조직, 그룹, 개인들의 사적 이익과 야심이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결국 충돌과 사고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취약한 지휘부 아래에서는 강경파와 출세주의자가 발호하기 마련이다.

통합과 양보는 지모와 용맹을 겸비할 때 가능한 것이다. 대신, 비겁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흔히 취하는 수단은 '법률'이다. 그러나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률의 지배'(rule of legislature)는 다른 것이다. '법의 지배'는 원칙과 가치의 지배인데, 이 때 '법'은 정의 그 자체이기도 하다. '법률'을 형식적 도구로만 이용하려 할 경우, 정의는 부서지고 민주주의는 찢겨진다.

지나친 복수는 이제 보수세력에게도 악몽이다. 기존 제도의 동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대통령제 자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국왕 처형을 요구한 것은 혁명세력이었으며, 전직 대통령을 파헤치는 것은 보수세력의 본분이 아니다. 한국 보수는 심각한 가치의 전도, 역할의 전도 상황에 있다. 한국 보수의 '자기부정적' 태도는 현직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높은 도덕적 수준을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법제도ㆍ언론에도 큰 타격

사법제도와 언론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촛불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대법원까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수사는 정치권과 국민 전체가 검찰 권력의 본질을 깨닫도록 했다. 검찰개혁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었다. 보수언론은 검찰보다 더 앞장서기도 하면서 방향을 오도했으며, 또 한 번 국민 대중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보수의 기둥들이 흔들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통 속에서 몸을 던져야 했다. 그러나 이 때 집권세력과 보수세력도 함께 추락했다. 그러는 사이 봉화산 부엉이바위는 '노무현의 신전'이 되고 있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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