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외 지음ㆍ김욱동 외 옮김/문학동네 발행ㆍ 312쪽ㆍ1만2,000원
"우리는 죽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삶의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 또한 우리 삶의 척도일지 모릅니다. 언어의 힘이란, 언어의 축복이란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하려는 데 있습니다."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국의 토니 모리슨에게 '언어'는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수단이었다.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도 언어와 문학, 언어와 현실에 관한 통찰력을 담은 시적인 연설로 여러 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버지의 가방> 에는 토니 모리슨을 비롯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1982), 오에 겐자부로(1994), 가오싱젠(2000), 오르한 파묵(2006), 르 클레지오(2008) 등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11명의 수상연설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 연설문은 "나는 왜 문학을 했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 문학과 인생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거장들의 응답과도 같다. 아버지의>
오에 겐자부로의 수상연설문에서는 비록 제국주의의 세례를 받은 '군국소년'으로 자랐지만 이후 전쟁 가해자로서 일본의 책임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양심적 지식인'이 된 작가의 문학관이 잘 담겨있다. "제 문학의 근본적인 형식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연결시키는 것"이라는 그는 "언어를 통해 표현자와 수용자 모두를 개인과 시대의 아픔으로부터 회복시키고, 그들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연설문을 통해 독재, 학살, 도피로 점철된 라틴 아메리카의 쓰라린 현대사를 울분에 찬 목소리로 고발했다. "제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양식 뿐 아니라 우리의 가공할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는 그는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약탈과 절망에 맞선 우리의 대답은 바로 삶"이라고 희망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우화적 비유로 현대세계의 위기를 진단한 귄터 그라스, 정치가 문학에 앞서는 중국의 현실을 고발한 가오싱젠 등의 연설문에서도 대작가들의 풍부한 통찰과 강렬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책 제목은 오르한 파묵의 연설문 내용에서 따왔다. 파묵은 사업가였지만 글쓰기에도 흥미가 있었던 부친이 원고를 숨겨놓았던 가방을 볼 때마다 문학적으로 자극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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