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이 생성되며 안에서 함몰해가는 행성의 최후.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존자들이 순간적으로 전송된 곳은 '스타트렉' 우주함선의 '트랜스포터 룸'이다. 지난 달 개봉된 공상과학(SF)의 고전 '스타트렉:더 비기닝'에서 양자전송 (양자역학)과 블랙홀 (중력)의 기묘한 만남 장면이다.
20세기의 자연과학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이 지배했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분자와 같은 아주 작은 세계를 잘 기술하였고, 일반상대론은 별의 함몰과 같은 매우 큰 물체에만 영향을 미쳤다. 두 영역 사이의 간극을 접목하는 것은 이론물리학의 가장 도전적 과제로 남아 있었다.
양자역학적 미시세계의 현상은 매우 기묘하며 우리의 직관과 흔히 배치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양자얽힘'이다. 1930년 어윈 쉬뢰딩어는 '생각실험'을 수행했다. 두 입자가 서로 얽힌 양자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자. 한 입자의 상태가 측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는 이에 따라 결정된다.
이 경우 거리에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양자정보가 이동한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1993년 미국 IBM의 찰스 베넷은 양자전송의 이론적 가능성을 보였고, 1997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안톤 젤링거는 광양자(빛의 입자)를 전송하는 첫 실험에 성공하였다.
원칙적으로 양자역학의 원리는 대상의 크기와 거리에 제한이 없다. 지난 4월 필자가 방문했던 독일 하노버 소재 막스플랑크 중력파연구소의 로만 쉬나벨 소장의 아이디어는 훨씬 더 담대하다. 그는 원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1025배) 두 개의 거울로 구성된 '양자미러'를 만들고 있다.
이 경우 미묘한 양자얽힘 상태를 생성, 유지하려면 첨단 실험 기법이 필요하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무거운 물체가 움직일 때 만들어져 우주로 퍼져나가는 중력파를 연구하고 있어 이 미약한 신호 검출을 위한 초정밀 레이저 실험장치로 10-18 m (양성자의 1/1000 크기)의 양자얽힘 효과를 측정하고자 한다.
양자역학과 중력의 만남은 최근 과학 발전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모든 힘을 통합할 수 있는 끈이론 등을 제시하며,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그래비톤'의 존재를 예측하고 있다. 올해 가을 재가동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우주의 빅뱅 순간이 재현되면, 그래비톤 등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어 양자역학과 중력 이론의 통합이라는 오래된 난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블랙홀은 중력에 의해 빛을 포함한 어떤 것도 탈출할 수 없어 SF 영화의 좋은 소재도 되고 있다. 앞서 언급된 LHC 실험에서도 빅뱅 순간의 시뮬레이션에서 미니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 영화 속 벌컨행성와 같이 지구가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 양자역학을 결합하여 스티븐 호킹이 제시한 '호킹복사'에 따르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블랙홀도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며 사라지는 것이다.
'우주엘리베이터'와 달여행을 제시했던 공상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그의 꿈 중 많은 부분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사람의 순간이동은 모든 원자정보의 정확한 파악과 전송등 기술적 어려움과 이론적 한계 때문에 요원해 보인다. 반면 최근 수백 km이상 거리의 광양자 전송, 원자의 전송이 실현되고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등 양자 통신의 실용화에 큰 진전이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양자역학과 중력이 만나는 마지막 프론티어-'스타트렉'의 시대를 꿈꾸는 과학자들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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