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노란 풍선의 장강(長江)을 이루며 뒤를 따랐다. 국민장이 치러진 1주일 동안 500만 명이 조문을 했다. 가히 엄청난 애도와 추모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노무현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골수 지지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며 그의 가치와 꿈을 되살리자고 외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참여정부 후반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쏟아졌던 그 가혹한 비난은 무엇이었으며 불과 1년 반 전 사상 최대의 표 차이로 보수정권을 탄생시킨 것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이런 의문은 노무현 현상을 분석해보자는 사회과학적 탐구 차원을 넘어 한국 정치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실질적 모색의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 정서적 측면
몇달 전만해도'실패한 대통령'… 속죄 의식도 작용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국민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은 대통령이었다.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한민국은 전례를 찾기 힘든 추모의 열풍 속으로 오롯이 빠져들었다. 불과 몇 달 전 내려진 ‘실패한 대통령’이란 평가와 대비하면 극적 반전이기까지 하다.
신드롬으로 일컬어질 만한 추모 열기의 바닥엔 연민의 감정을 넘어서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무엇인가가 자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은 우선 대중의‘동일시’ 감정에 주목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60~70%는 스스로를 서민으로 생각한다”며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 풍모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에 금융위기가 찾아들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팍팍한 삶에 지친 서민들은 갑작스러운 노 전 대통령의 죽음, 그리고 이를 계기로 반추한 고인의 삶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빈농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가난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변호사가 되고 정치에 입문해서도 학벌과 기득권, 독재에 맞서 싸우며 풍운아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검찰 수사가 조여드는 와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비극적 죽음은 ‘그 양반도 내 신세나 별반 다르지 않네’란 이미지를 심는 강렬한 페이소스가 됐다.
시민 이승현(60)씨는 “대통령이기에 앞서 동년배나 친한 친구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빈소를 찾은 이들은 사실 그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찾아간 것일지 모르다”고 했다.
추모 열기의 바닥엔 고인에 대한 ‘미안함’도 깔려있는 것 같다. 대구에서 봉하마을로 조문을 갔다 온 회사원 장경석(38)씨는 “재임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비판만 했다는 미안함이 앞섰다”고 말했다. 윤기석(42)씨는“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우리가 그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감정을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국민들의 잠재의식에 나도 공모자라는 죄책감이 자리한 것”이라고 분석했고,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남의 장점을 제고시키기 보다 깎아내리는 풍조에 알게 모르게 동참했던 데 대한 집단적 속죄의식”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죽음을 전후해 ‘인간 노무현’은 바뀐 것이 없다. 바뀐 것이 있다면 국민의 시각이다. 재임 당시 큰 파열음을 내며 비판의 대상이 됐던 고인의 파격적 행보와 거친 말투는 어느새 반(反) 권위를 상징하는 서민적 풍모로 평가를 고쳐 달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국민들이 서거를 통해 최고 지도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무현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떠받친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이었다. 결국 분출된 국민의 감성 에너지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바꿔내고, 제도로 승화시키느냐는 이제 정치권의 몫이 됐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 정치적 측면
MB 경제살리기와 대비되는 '노무현적 가치' 새삼 부각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적 추모의 물결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몰고 온 충격, 인간적 면모에 대한 향수 등 정서적 측면만으로는 오롯이 설명되지 않는다. 현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실망이나 불만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대입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노무현 현상'이라 불리는 추모 열기가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당분간 한국 사회에 내연하는 강력한 흐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추모 기간 진행된 '정치인 노무현'의 재발견은 "지내놓고 보니 전 정권이 더 낫더라"는 식의 막연한 상대평가와는 사뭇 달랐다. 추모 국민들이 현 정권에서 보지 못하는 가치들을 전 정권에서 찾으려는 모습은 분명 전례가 없던 현상이다.
국민과 직접 소통을 추구構?권력기관에 의한 통치를 거부한 노 전 대통령의 탈권위적 모습이 집중 조명받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참여정부의 접근법과 반대로 갔던 현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내재돼 있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민심과 소통하기보다 법치를 앞세우고, 4대 권력기관을 주요 통치수단으로 삼는 권위주의 정부라고 보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와의 대비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런 불만 기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연해 있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기조, 신권위주의로의 복귀, 소수 기득권 세력을 위한 통치에 대한 불만이 1차 촛불집회에서 분출했지만 정부 여당은 시행착오를 고치는 대신 공안능력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때 해소되지 않았던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이번에 다시 분명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추모 열기는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도 깔려 있다. 경제만은 살릴 것이라는 판단으로 '민주'보다 '성공'에 방점을 둔 후보를 찍어줬는데, 경제분야에서조차 나아졌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논란이 있어도 참여정부 때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했고 5년간 4~5%대의 경제성장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윤 교수도 "금융위기라는 외부의 충격이 있기는 했지만, 성공의 관점에서도 이명박 정부 평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현상'은 단순히 현 정부에 대한 실망에서 나온 반사이익만은 아니다는 해석도 있다. 그가 추구했던 인권, 탈권위주의, 지역균형발전, 분권 등의 가치는 시간을 뛰어 넘는 시대적 방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경제살리기와 같은 정책과제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이 지향한 것은 일종의 시대적 방향성이 분명한 가치였다"며 "물론 시행방법이 서툴고 투박해 논란이 있었지만 언젠가 그가 지향한 가치가 재평가받는 시기가 올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단지 그의 비극적 죽음으로 재평가 시기가 좀 더 빨리 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 기록으로 본 '노무현 현상'
국화 50만송이 쇠고기 800㎏ 만장 1700여개 사용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가져온 '사회적 충격'은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조문객 수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봉하마을에는 국민장이 치러진 1주일 동안 100여만명의 조문객이 직접 다녀갔다. 서울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비롯해 전국에 마련된 300여곳의 분향소에 몰린 조문행렬은 400만명을 넘었다. 국민 10명 가운데 1명 꼴로 직접 분향소를 찾았다는 얘기다.
올해 초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40만여명)보다 훨씬 많고, 역대 최대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1979년) 당시의 조문객 수 200만명도 훌쩍 뛰어넘었다. 물론 김 추기경의 경우 분향소가 한정됐고 박 전 대통령 당시 인구가 적었다는 점에서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역대 최대 조문객임은 분명하다.
특히 이번 조문의 경우, 이전의 국장이나 국민장 때에 비해 순수한 자발적 참여가 돋보였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지난달 29일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 모인 추모인파는 주최측 추산으로 50만명에 달해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열기를 떠올리게 했다. 추모 열기가 현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면 향후 정국이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조문객 뿐만 아니라 다른 기록적 '숫자' 들도 적지 않았다. 영정 앞에 놓인 국화가 전국적으로 50만송이가 넘었고, 봉하마을에서 조문객을 위해 쇠고기국밥 재료로 하루 평균 쌀 1만㎏과 쇠고기 800㎏이 소비됐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만장은 1,700여개가 사용됐고, 조문객들이 착용한 검은 리본은 135만개가 만들어졌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도 사상 최대인 1,383명으로 구성됐다.
양정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