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한국일보가 마련한 대담에서 박효종 서울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와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모두 강도는 달랐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또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청와대와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은 '국민 통합'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보수진영의 박 교수는 이 대통령의 법치 강조를 수긍하면서도 '따뜻한 법치'를 촉구했고 진보적 색채의 김 교수는 이 대통령 정부하에서 민주주의의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고태성 정치부 차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열기가 온나라를 뒤덮었다. 이 같은 ‘노무현 현상’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효종 교수=“딱히 잡아내기는 힘들다. 현재 국민은 정치 성향, 이념 등의 차이를 넘어서 한 목소리로 애도하고 있다. 지지하지 않더라도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은 향후 우리 공동체가 경청하고 주목해야 할 중요한 어떤 실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형기 교수= “지켜주기 못해 미안하다는 ‘지못미’로 대변된다. 여기엔 현 정부와 검찰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투신 자살로 몰아간 것 아니냐는 반감이 작용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에 미진한 현 정부에 대한 불만도 배경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서민적 면모에 대한 존경 등도 복합적 요인에 포함된다.”
-추모열기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김 교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민주주의의 과잉이 있었고 지금은 민주주의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선진화가 민주주의 후퇴를 초래하면서 국민들이 지난 정부를 그리워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의 민주주의, 인권, 균형발전, 양극화 해소 정책 등에 역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장기 발전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재평가를 통해 무엇을 계승하고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 교수= “진정성 있는 정치적 전사였던 노 전 대통령은 탈 권위주의, 기득권 포기 등 열린 정치에 기여한 긍정적 유산을 남겼다. 정치엔 정반합 차원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는데 현 정부에선 노무현 정부 반대로 일관하면서 모두 아우르는 통합의 국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국민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 10년 만에 출범한 실용보수 정부가 품격 높은 신바람 정치로 국민통합을 해야 하는데 안되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좀더 구체화한다면.
김 교수=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갈등을 풀고 대화와 타협을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촛불집회, 용산 철거민사태, 미디어 관련법 추진 등에서 볼 수 있듯 절차를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해서는 절대 선진화를 달성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뼈저리게 각성해야 한다.”
박 교수= “현 정부가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측면에서 민주주의 후퇴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법질서 확립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물론 법치를 강조한 현 정부는 법이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닌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는 따뜻한 법치를 만들어야 했다. 반대편에도 귀를 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에 문제점이 있나.
김 교수= “약자보호가 법의 중요한 요소인데 우리 사회는 약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 그래서 법이 강자의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도시빈민,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가 법의 제재만 받고 있기 때문에 의회 등을 통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지금 과거 독재체제로 돌아갔다고 보지는 않지만 집회ㆍ시위를 막는 것은 1987년 이전으로 가자는 것 아닌가.”
박 교수= “법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따뜻한 사회가 전제 돼야 한다. 법의 기본정신은 억압이 아니라 자율성과 자기절제성의 고양이다. 법치를 공약한 현 정부는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혐의가 있으면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법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현 정부 책임론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박 교수= “살아있는 권력이 현직에 있을 때 건드리지 못하다가 죽은 권력일 때 조사가 이뤄지는 행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커다란 병폐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사정팀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로 읽혀진 측면이 있지만 검찰도 투명하게 조사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가 서투르게 진행되면서 공정하지 않게 비친 것은 검찰의 책임甄?”
김 교수= “국민은 수사가 너무 형평성을 잃었다고 보는 것 같다. 전직 대통령 사건은 신중하게 배려해야 했는데 한쪽으로 몰아가 국민들이 검찰을 원망하고 있다. 검찰은 물론 추상같이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해야 하지만 모멸적 방식으로 수사해서는 안되고 균형감각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것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박 교수=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단순한 인적개편 보다는 국정스타일 자체를 리모델링 해야 한다. 국민은 정말 새로운 신바람을 체감할 수 있는 리더십을 주문하고 있다. 소통과 설득을 통해 통합을 이룩하는 포용력을 보여줘야 한다. 말없이 일을 많이 하는 생산성ㆍ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 방식을 재조정해야 한다. 현 정부는 따뜻한 보수로서 사회적 약자를 끌어 안았어야 했는데 소통 능력이 부족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김 교수= “직접적 책임이 있든 없든 무엇인가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퇴진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슴에는 응어리를 갖고 있다. 지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하면 대한민국은 후퇴한다. 대오각성해서 ‘잃어버린 10년’을 부정만 해온 자세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보수 중에서도 민주 세력과 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로 정부가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투쟁적 방법을 답습한 낡은 진보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낡은 진보와 낡은 보수가 싸우면 선진화가 아니라 후진화가 된다. 기업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CEO(최고경영자)의 독재 체제이지만 국가 경영은 다르다. 현 정부는 대화와 타협의 소통을 생략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방식을 쇄신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지적되는데 개헌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은.
김 교수= “통일 등을 앞두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 만큼 대통령제는 필요하다. 다만 대통령은 최후의 조정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빈사상태의 거버넌스를 다시 확립해야 한다. 거버넌스의 한 형태로 철거민, 비정규직 대표 등 사회적 약자가 참여하는 위원회 설치 등 제도 보완을 통해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시간을 갖고 평가 받을 수 있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옳다고 본다.”
박 교수= “개헌은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반대다. 현행 헌법 하에서도 대통령 결심 여하에 따라서 책임 총리제도 등을 통해 책임을 나누고 권력 집중을 줄일 수 있다. 민심을 여러 채널로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김 교수의 거버넌스 활성화 제안에 공감한다.”
-여야 정치권이 가져야 할 자세는.
김 교수= “여당인 한나라당은 집권이후 사회갈등을 줄이는데 기여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민주당도 정부ㆍ여당에 대한 공세로만 나오면 곤란하다. 여야 모두 국정운영에 책임지는 자세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정치권의 잘못을 인정하고 남북대립의 격화 속에서도 국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대화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협력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박 교수= “역대 정부의 오랜 화두였던 통합을 지금 실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공동체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170여석의 거대 여당은 초식공룡처럼 웰빙에 안주하며 세만 과시할 것이 아니라 뼈를 깎는 각성을 통해 신바람이 나는 훈훈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민주당도 서울광장의 추모 열기에 휘말리면서 거리의 정치에 추종하는 곁불을 쬐려 하지 국회 안에서 통합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1953년 경북 상주생▲서울대 경제학과, 동 대학원 졸업. 서울대 박사▲파리 13대학 초빙교수▲노동부 정책자문위원▲21세기 경북발전위 위원▲대구사회연구소장▲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지방분권국민운동 대표자회의 의장▲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 박효종 서울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
▲1947년 서울생▲가톨릭대 신학부, 동 신학대학원 졸업. 서울대 교육학 석사. 미 인디애나대 정치학 박사▲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대표▲한국국민윤리학회 회장▲동북아학회 편집위원장▲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교과서 포럼 상임대표
정리=고성호기자 sungho@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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