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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도시 심리학' 폭탄주·휴대폰·메신저…한국의 도시인, 그들은 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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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도시 심리학' 폭탄주·휴대폰·메신저…한국의 도시인, 그들은 포로다

입력
2009.05.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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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지음 /해냄 발행 · 240쪽 · 1만2,000원

생활 퀴즈 하나. "친해야 하는 사명감과 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 욕구 사이의 딜레마를 고비용으로 해소해 주는 솔로몬의 지혜"(32쪽)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폭탄주'라는 답을 생각해 냈다면 당신의 감각은 꽤 쓸만하다. 팁으로 "오늘날 도시의 밤거리에 룸살롱이 번창하는 이유"라는 말까지 달아줄 수 있다면 시사 평론가 수준이다.

정신과학자는 일상으로부터 소통의 문제, 분리된 자아, 통제를 벗어난 욕망, 붕괴된 관계를 읽어낸다. 정신과학 이론, 동서고금의 명작, 현재의 대중 문화 이론 등 폭 넓은 그물에서 건져 올린 담론 덕에 도시인이라는 '문제적 개인들'의 내면이 선명히 해부된다. 책에 예시된 여러 현상은 격변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갖고 있을 편린이다.

그들은 자유를 누리는 듯 하나, 철저히 관계망의 포로다. 휴대 전화, 메신저, 미니 홈피가 그들의 빅 브라더다. IQ와 EQ를 넘어 NQ(네트워크 지수)로 평가 받는 한국인들은 3.5 단계면 다 엮인다고 카이스트도 밝혔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쓸쓸함의 무게는 두꺼워지고 옵션만 많아진다"(24쪽)고 한다.

예외 없이 돌아가는 폭탄주는 평등함과 공정함의 다른 이름이 됐고, 찡그리며 들이키는 모습을 지켜보며 모두 관음증 환자가 된다. 그 같은 동질성은 '가성(假性) 친밀감'을 유발시키며 참가자들을 집단 퇴행 상태로 몰고 간다.

사회적 문제는 심리구조의 반영이다. 영어에 목을 매는 것은 영어가 짧아 고생했던 기성 세대의 트라우마(심리적 상처) 때문이며, 짧은 영어 실력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의 경제적 성공을 가학적으로 만끽하려는 잠재 욕구의 소산이다. 한국을 분열시키는 종교적 독선의 문제와 관련, 저자는 "세상에 대한 안정적 예측과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다면 믿음이 필요 없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55쪽)이라며 한국에 만연한 불안감을 근본적 이유로 들었다. 대리운전이 성업을 누리는 것은 "이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낮 시간 동안 높여 놓은 경계심을 낮추는 속효성 단기 마취 효과" 때문이다.(178쪽)

책은 한국 사회를 임상 테이블로 끌고 온다. 예컨대 성형수술 열풍과 관련, 저자는 술자리 안주 같은 이야기로 결론에 대신한다. "못생긴 사람은 고치고 잘 입혀서 데리고 살 수 있지만 성질 안 좋은 것은 해결하기 어렵다."(102쪽) 얼굴 뜯어고치기 열풍의 앞에서는 분석적 용어가 일단 뒷전이다. 저자 하지현(42ㆍ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ㆍ사진)씨는 "도시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심층심리, 내면적 고통의 속살을 보이고자 했다"며 "공감과 안도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임상 현장 등지에서 1년 전부터 모은 각종 자료를 중심으로 씌어진 책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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