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쓴다. 옆에선 아내가 울고 있고, 젖먹이 아이도 따라 앙앙거리고 있다. 광화문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텔레비전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노트북에 손을 얹고,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지금 쓴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였다. 그때도 나는 글을 썼다. 그에게 묻는 글이었다. 왜 특목고 문제 해결하지 않고, 왜 부동산 문제 해결하지 못하는지, 왜 젊은이들 이라크에 파병하고, 왜 동의없이 FTA 체결하려 드는지, 나는 계속 질문했다. 질문의 형식이었지만, 사실은 스스로 답안을 다 마련한 뒤 쓰는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겁대가리 짱 박고’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었다. 글은 거침없이, 생각보다 더 잘 써지는 것 같았다.
그가 생전 즐겨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오자, 아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나는 아내에게 괜스레 짜증을 낸 후, 담배를 가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를 물고 고개를 들자, 아파트 앞 동에 힘없이 휘날리고 있는 조기(弔旗)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조기들을 헤아리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왈칵, 수직의 벼랑을 보고 말았다. 아찔한 높이를 마주하자, 난간을 부여잡은 손아귀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툭,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쓰고 싶지 않은 글을 마저 쓴다. 아내는 속울음을 우는지 자꾸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다. 텔레비전에선 여고생 한 명이 노란 풍선을 날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넥타이를 한 사내는 무뚝뚝한 얼굴로 전경들을 쳐다보고 있고, 할머니 한 분은 손수건만 꽉 움켜쥐고 있다.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었다. 그가 현직에서 물러나고 난 뒤였다. 그때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가림막이 사라지자,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선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는 우리에게서 공포를 빼앗아간, 우리와 윤리적인 거리에서, 윤리적인 발걸음을 내딛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권력이었다. 권력이 윤리적이자, 우리들은 너나없이 ‘겁대가리를 짱 박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언론도, 검찰도, 시민단체도, 작가들도, 그에게 함부로 말을 해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에게, 그만큼 윤리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죄의식이 되어버렸다.
그가 죽자, 사회가 흔들렸다. 지금 저 노제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은, 아니 지난 일주일 동안 그를 찾았던 수백만 국민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지금 우리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일 터이다. 그는 죽음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행로들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그가 죽었다 한들, 다시 내일이면 사람들은 유원지를 찾고, 맥주를 마시고, 야구장을 찾아가겠지만, 그러나 그 마음의 색깔은 이전과는 다른 빛깔이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이, 그의 유서가, 화석 같은 질문으로 우리 곁에 남았기 때문이다. 죽어 썩지 않는 질문이 된 그는, 질문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아내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허기졌던 아이는 쌕쌕, 숨소리를 내면서 허겁지겁 젖을 빤다. 그 옆에서 나는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쓴다. 자꾸만, 자꾸만 아내와 아이에게 눈길이 가,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는 질문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가. 그것이 지금 내게, 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삶인가. 그가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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