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1일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입법화까지는 치열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존엄사 자체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존엄사 판정 대상이 될 환자의 기준, 연명치료의 범위, 환자와 가족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하지만, 워낙 복잡하고 이견이 많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고, 같은 당 전현희, 김세연 의원도 각각 별도 발의를 준비 중이다.
신 의원은 내달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지만, 연내 국회통과 가능성은 낮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도 별도 발의를 할 만큼 각론에 들어가면 견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전재희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판례는 판례이고 입법화에 있어선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별도 정부입법을 추진하지 않고 의원입법안 심사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쟁점은 존엄사 대상이 되는 환자의 기준이다. 신의원 입법안은 '2인 이상 의사에 의해 말기상태 진단을 받은 환자로,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질환별, 환자상태별 논란이 불가피하다.
서울대병원의 최근 가이드라인처럼 '말기암 환자'로 국한할지, 아니면 다른 질환의 환자까지 포함할지, 또 뇌사만 인정할지 아니면 식물인간도 포함할지 등이 논의돼야 한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 환자에 대해 존엄사를 허용했지만, 식물인간은 말기 암과 달리 워낙 다양한 형태의 환자가 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단하게 될 연명치료 범위도 논란이다. 서울대병원은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 3가지로 국한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쟁점사항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수액 등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의 경우, 환자에 따라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일 수 있지만, '굶어서 죽게 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상 문제도 많다. 서울대병원은 환자 본인이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경우 대신 결정할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대법원 판결만 해도 환자가 의사를 밝혔거나, 평소 언행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의사 추정이 가능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환자의 진정성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냐는 문제가 있다. 환자가 가족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을 우려해 존엄사에 서명할 가능성도 많은데, 이는 생명윤리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안 하나하나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 존엄사, 환자 의사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 안해/ 안락사, 약물 투여 중단 등 죽음 앞당기는 행위
21일 대법원이 회복불능 상태에 있는 환자 김모(77ㆍ여)씨에게 허용한 '존엄사'와 흔히 말하는 '안락사'는 어떻게 다른가. 또 '식물인간 상태'로 진단된 김씨의 상태는 뇌사(腦死)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보통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해서 말해진다. 적극적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불치병 환자나 의식불명의 환자 등에게 의사가 직접 독극물을 주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다. 이에 비해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분, 약물 등의 투여를 중단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존엄사는 의학적인 치료를 다했지만 효과를 얻지 못했을 때 환자의 의사에 따라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영양분, 약물 등을 계속 공급하는 것이 소극적 안락사와 다른 부분이다.
안락사와 존엄사가 환자의 죽음에 대해 의료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따라 구분되는 표현이라면, 식물인간과 뇌사는 뇌가 손상된 정도에 따라 환자의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다.
식물인간 상태는 심장, 폐 등이 한동안 정지되는 바람에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뇌가 심각한 손상을 받아 발생한다. 일부 기능이 살아 있어 자발적 호흡이 가능하거나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식물인간 상태가 된 후 6개월이 지나면 의식이 돌아올 확률은 0~8%로 매우 낮아진다. 김씨의 경우 대뇌, 소뇌 등의 기능이 멎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고, 뇌간(숨골)도 대부분 손상돼 자발적 호흡도 없었다.
이에 비해 '뇌사'는 뇌 기능이 모두 정지해 사실상 사망에 이른 상쨈? 다만 심장과 장기는 움직이고 있어, 적법한 뇌사판정 절차에 따라 환자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뇌사 상태라도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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