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나무와 꽃들이 다투어 생명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5월에 죽음에 관한 뉴스들이 몇 건 보도됐다. 산림청이 처음으로 양평에 수목장 림 '하늘 숲 추모원'을 개원했다는 소식, 말기 암 환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서울대 병원의 결정, 존엄사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 등을 보면서 생명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죽음을 '자연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은 큰 변화다. 불과 이 삼십 년 전만 해도 잘 꾸민 묘지를 보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묘지 자체가 자연에 부담을 준다는 느낌을 먼저 갖게 되었다. 잘 꾸민 묘지는 이제 가문의 자랑이나 효도의 상징이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反생명적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연에 부담을 주지 말고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 사람들에게도 부족한 땅을 잠식하며 묘지를 만드는 대신 화장한 골분을 자연에 뿌려 순환하게 하자는 운동이 힘을 얻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골분을 나무 밑에 묻어서 나무의 일부가 되게 하겠다는 수목장의 개념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 세대 전이라면 호감보다 거부감이 더 강했을 것이다.
존엄사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를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하여 연명시키는 것이 과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인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주렁주렁 생명보조 장치를 부착한 채 희망도 의식도 없는 환자를 '죽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른 의술인가. 또 그것이 가족의 사랑이고 도리인가. 의미 없는 연명치료야말로 반(反)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이라는 인식이 존엄사 운동의 출발이다.
서울대 병원은 18일 암 말기 판정을 받은 환자나 환자의 대리인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할 경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의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서울대 병원은 2007년 암 말기환자 656명의 사망과정 자료를 이날 함께 공개했는데 15%는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을 했고, 85%는 환자가족의 희망을 받아들여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나와있다. 현재 연명치료 중단은 불법인데, 서울대 병원이 대법원 판결에 앞서 자기 병원의 불법사례까지 공개한 것은 존엄사 허용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21일의 대법원 판결은 존엄사 허용으로 정리됐다. 환자의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 위원회의 판단이 있다면 환자나 가족의 희망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판결이다. 작년 2월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77)의 가족들은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1ㆍ2심 재판부는 "김씨가 평소에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의사를 밝히는 등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바 있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사를 인정한다는 것은 생명의 존중과 생명의 경시라는 양면을 가질 수 있는 매우 예민한 문제다. 그러므로 의료계와 각 분야가 폭 넓게 참여하는 논의를 거쳐 보완책을 마련한 후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법에 따라 본인이 원할 경우 연명치료를 안 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목장이나 존엄사 문제는 우리가 생명과 자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자신의 생을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는 본질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반드시(!) 죽는 것이므로 죽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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