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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슬픈 노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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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슬픈 노랑 노무현

입력
2009.05.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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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하늘을 한참을 올려보면 그 하늘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다음 날 서울의 하늘은 5월 창창한 햇살로 더욱 눈이 부셨다. 지친 영혼에 단비로나마 목을 축이라 했을까. 하늘도 슬펐다는 여우비가 하늘을 가로질러 가기 전, 그 눈부심은 슬픈 노랑 빛을 띠었다.

장례를 치르고 있는 도심 곳곳. 대한문 앞에는 노랑 천막이 쳐져 있다. 검은색 근조 리본만큼 노랑 근조 리본도 씁쓸하게 떨고 있다. 내 아이는 "할아버지 사탕 드세요"라는 글과 다섯 개의 사탕을 붙여 그의 영전에 올렸다. 가끔 아이의 사탕이나 과자를 뺏어 먹으며 아이를 놀리던 그의 소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노 전 대통령의 색은 누가 뭐라 해도 노랑이었다. 노랑은 민주주의의 상징 색으로 우리 정치사에 등장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희망의 색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노랑 가운데에서도 들판의 익은 곡식같이 풋풋한 노랑이 어울렸다. 그런데 뚝배기같이 우직하고 단단해 보이는 그의 외면과 다르게, 내면은 여린 노랑의 속성을 너무 많이 닮아 버렸다.

노랑은 빛과 가장 가까운 색으로 흰 색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색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불안정한 색이 되는 것이다. 흰 색이 더해지면 밝게 빛나고, 검정이 함께하면 위험을 느끼게 되고, 빨강을 더하면 주황으로, 파랑을 더하면 녹색으로, 다른 색이 조금만 섞여도 노랑은 바뀐다. 조금만 더러움이 타도 노랑은 빛을 잃는다.

꿈틀대는 빛 <해바라기> 는 고흐를 노랑의 작가로 떠올리게 한다. 고흐의 <노란 집> 은 현실과 다른 이상과 즐거움을 주는 그림이다. 그렇게 노랑은 명랑하고 활기찬 색, 정신과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온기를 전하는 색이다. 그러나 고흐도 <노란 집> 이나 <해바라기> 를 그릴 때 자신이 자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노란 색은 밝음 이면의 경고의 의미가 있다.

노랑은 빛, 이성, 긍정을 뜻하기도 하나 시기, 배반, 불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후의 만찬> 에서처럼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옷은 대개 칙칙한 노랑으로 거짓을 상징했다. 노랑이 중국에서는 천자의 색, 이집트에서는 왕좌를 상징하는 권력의 색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도 눈에 띄는 색인 만큼, 서양사에서는 창녀나 유대인의 표식같이 사회적 불신과 차별의 의미로도 쓰였다.

베이컨의 그림 <인노켄티우스 10세 연구> 에서 교황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영예로운 성직자 교황의 엄숙한 모습이 아니라 베이컨에게 교황은 외롭고 힘든 직책의 인간일 뿐이다. 교황의 성좌도 불안한 노랑이고, 그를 가두고 있는 선들도 검은 바탕 위의 창백한 노랑이다. 뾰족한 노랑 선들은 그의 비명을 더 강하게 전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도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명에 귀 기울여주지 못했다. 칸딘스키는 노랑은 중심을 벗어나려 하며 앞으로 나오거나 위를 향한다고 하였다. 외적인 긴장을 주고 폭발, 공격, 주장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에서 그의 색은 베이컨이 그린 <인노켄티우스 10세> 처럼 슬픈 노랑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추모의 시간 후에, 그의 노랑이 고뇌와 함께 시대를 아프게 마감한 차가운 노랑이 아니길, 시골길 누런 황금 밭과 잘 익은 참외 하나처럼 우리 가슴 속에 온기를 전하는 따듯한 노랑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의 영정에 날아든 흰 나비처럼 더 이상 슬픈 노랑에서 그를 가두지 않고 빛으로 그를 보내며 그의 자유를 빈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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