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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상록수

입력
2009.05.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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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중 앞에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통한 '인간 노무현' 보여주기는 그의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타는 목마름으로> <어머니> 같은 운동권 가요를 즐겼다. 2002년 대통령 선거전 당시 그는 "독재 시절, 노래 때문에 용기를 갖고 거리로 나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중가요도 잘 불렀다. <사랑으로> <작은 연인들> <부산 갈매기> 등이 애창곡이었다. 퇴임 후 봉하마을 관광객들 앞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박수를 치며 구성지게 전통가요를 부르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노 전 대통령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노래가 <상록수> 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로 시작되는 가사도, <상록수> 탄생 과정이나 노래가 겪은 질곡의 세월도 노 전 대통령의 삶의 궤적과 닮았다. 김민기씨가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들었다는 점, 70년대 말 80년대 초 대표적 운동권 가요로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 점은 인권ㆍ노동 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노 전 대통령의 생과 오버랩된다. <상록수> 가 87년 금지곡 해제 조치 후 빛을 보고 대중적 사랑을 받게 된 것처럼 노 전 대통령도 이후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98년 외환 위기 당시 정부는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TV 공익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마침 그 해 7월 박세리가 US여자오픈 골프에서 우승했다. 정부는 박 선수가 양말을 벗고 호수에 들어가 기적 같은 샷을 하는 장면과 함께 배경음악으로 <상록수> 를 사용했고, 이 공익광고는 국내외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3월 1일 <상록수> 는 다시 한 번 변신했다. 3ㆍ1절 기념식장에서 양희은씨가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차림으로 서서 <상록수> 를 축가로 부른 것이다. 대중가요, 그것도 운동권 가요가 정부 행사에서 공식 축가로 불리기는 처음이었다.

▦29일 노 전 대통령의 발인제와 영결식, 노제가 열린 봉하마을과 경복궁, 서울광장에 <상록수> 가 합창으로, 해금으로, 양희은의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시민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상록수> 는 울분과 고통과 슬픔을 삭이며 각오와 희망, 의연함과 용기를 북돋는 노래다. 그러나 뜻밖에도 <상록수> 는 노 전 대통령을 잃은 아픔의 노래, 그의 명복을 비는 추모의 노래가 되고 말았다. <상록수> 는 또 어떤 노래로 변할까. <상록수> 가 귓전을 울릴 때마다 통기타 치며 이 노래를 부르던 노 전 대통령이 생각나겠지만, 더는 '거리의 노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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