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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스펙'과 '깜냥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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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스펙'과 '깜냥 쌓기'

입력
2009.05.3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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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살아간다. 요즘 대학생들이 쓰는 '스펙'이란 말에는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말은 2004년 국립국어원이 펴낸 신어 자료집에도 들어 있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돼 있다.

객관적 조건과 노력의 차이

대학 생활 동안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의 총체인 셈인데, 인턴이나 해외연수 경험, 봉사활동, 각종 자격증은 물론 외모와 체형 등 신체적 조건까지 포함된다. 공산품이나 건축물 등 인공물의 설계 규격이나 명세를 지칭하던 말이 인간의 조건에 전용된 것이다. 이 규격은 배우자를 고르는 데도 중요한 참고 사항이다.

사람의 조건뿐 아니라 그가 가진 소유물도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 요소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다는 자동차 광고 카피는 거주지역과 아파트 면적으로 거기 사는 사람을 평가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별다른 효용가치도 없는 명품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크면 짝퉁 명품 시장이 저렇게 커버렸을까. 소유물은 성공의 척도고 좋은 스펙은 성공의 가능성이다. 물론 스펙은 노력의 결과이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사람이 가진 조건과 소유물이 정말로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얻은 성공이 진정 행복을 보장해 주는가 이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3월 스펙을 높인다는 뜻의 '스펙 업'이라는 외래어를 대체할 순수 우리말로 '깜냥 쌓기'를 선정했다고 한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깜냥은 '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인간을 규격이나 명세로 평가하는 천박한 시대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조건이 아닌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스스로 추가적 노력으로 좋지 않은 조건을 극복할 가능성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스펙은 경쟁의 도구일 뿐이지만, 깜냥은 일을 헤아리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획득한 능력을 함축한다. 스펙은 점수와 자격증과 같은 서류로 대변되지만 깜냥은 인성, 창의성, 도전정신, 인간관계 등 일과 삶의 폭 넓은 맥락을 헤아리는 태도와 능력이다. 무엇보다 스펙은 과시의 수단이지만 깜냥은 스스로를 향한 반성과 노력이다.

사람들이 학벌, 점수, 자격증 등 객관적 조건에 집착하는 건 우리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때문이다. 주체적 사유와 표현의 능력을 측정하기위해 도입한 논술 시험은 객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등급으로만 표시하여 그야말로 '수학능력'을 측정하려던 수능등급제는 소수점 이하까지 계산하고 석차를 나누어 줄을 세우는 경쟁체제로 바뀐다. 사람의 깜냥을 찾아내고 키워주는 '교육'은 없고 점수와 스펙으로 사람을 분류하여 처리하기 위한 '평가'만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뒤집어 보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역사 속에는 시대를 잘못 만나 빛을 보지 못한 천재도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새 시대를 창조한 천재와 영웅도 많다. 20세기 과학혁명을 이끈 아인슈타인도 대학 졸업 때까지는 평범한 정도를 넘어 다소 아둔할 정도였고, 졸업 후 특허국에 취직할 때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하급 직원으로 발령됐다.

세상의 틀 벗어난 역발상을

그의 깜냥은 수학문제를 독특하게 풀어내는 재주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대한 호기심이 다였다. 키도 크지 않고 평발인 박지성이 프리미어 리그의 '산소탱크'가 된 것도 스펙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추구한 열정 덕분이다.

상식을 뒤엎는 역발상이 세상을 바꾼다. 세상이 만든 틀 속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가 많아진다면 더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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