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개 주채무계열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약정(MOU) 확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대상 그룹들의 구명(求命)작업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일부 그룹들이 채권단과 강제성이 없는 '자율 협약'을 맺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나머지 그룹들도 형평성을 앞세워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형국이다. 일단 이들 그룹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나서서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는 만큼 '무조건 버티기 전략' 보다는 객관적 자료와 읍소를 통한 '감성적 설득 전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간을 주세요
그룹내 건설사의 부실 때문에 MOU체결 대상에 오른 A그룹 재무 담당 임원은 지난주 하반기 예상 재무재표를 갖고 채권단 여신 담당을 찾았다. 하반기 핵심 계열사 상장이 될 경우 부채비율 뿐 아니라 현금 유동성이 얼마나 좋아지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인데 MOU를 맺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계열사는 지난해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실제 상장을 눈앞에 둔 상황이라 채권단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채권 은행관계자는 "다른 그룹처럼 계열사를 팔 상황도 아닌데 MOU체결은 지나치고 자율 약정 정도만 맺자고 하는데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엇갈린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리는 왜 정상 참작이 안 되나요
지난해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해외 기업 지분을 인수한 B그룹은 채권단에 '정상 참작'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지분인수를 시작할 당시보다 환율이 급등해 대규모 환차손이 생긴데다 인수 대상 기업의 주가도 폭락해 엄청난 평가 손해를 봤다는 것. 현재 일부 계열사 매각을 서두르고 있고, 지금처럼 환율이 하락세를 유지하면 그룹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설득의 요지다.
일부 조선그룹과 정유 회사들이 '외생 변수' 를 이유로 MOU 체결 대상에서 빠진 점을 강조하며 "우리도 같은 처지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채권단의 최종 결정도 쉽지 않다.
차별 대우 아닌가요
30대 내외의 중견 그룹들은 채권단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방어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부터 채권단으로부터 경고를 받아 서둘러 헐값에 자산을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해왔는데 정작 덩치 큰 그룹들의 자산은 '시장상황'을 이유로 채권단이 사 주겠다고 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C그룹 관계자는 "올 초 핵심 사업장 부지를 싼 값에 넘기고, 계열사 지분까지 최저가에 처분했는데도 MOU를 맺는다는 것은 억울하다"며 "작고 힘없는 그룹들이 차별을 받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그룹들의 채권단 설득작업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채권단 관계자는 "일부 MOU 체결 대상 그룹들이 최근 구체적인 재무구조 개선안을 내놓고 채권단을 찾는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채권단도 이를 대부분 감안한 상태고, 당국의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재무 약정을) 계획대로 추진해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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