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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무원이 주인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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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무원이 주인인 공화국'

입력
2009.05.3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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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왕정이 아니니 공화국인 것은 맞으나 요즘 공무원 인사를 보면 과연 국민이 주인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서 저작권정책 전반을 수립하여 집행하는 저작권정책과장이 3개월 만에 바뀌었다. 지난 3년 사이 이 자리에는 무려 5명의 과장이 임명되었다. 이 기간은 한미 FTA라는 국운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협상이 있었고 저작권은 20여 개 협상분과 중 하나였다. 저작권과장은 지적재산권분과의 공동분과장을 맡기도 하였다.

국민보다 공무원을 위한 인사

이토록 중요한 자리에 인사이동이 잦았던 것이 해당 공직자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인사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정부 내에는 같은 직급에서도 서열이 있다. 과장 또는 국장급 자리 중에서도 상위 서열의 자리가 비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쇄 이동을 하는 것이 흡사 한 칸씩 착착 움직이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나 붕어빵 만드는 기계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에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이 한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능력이 없거나 경력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돼 공무원 스스로 부서를 바꿔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사권자 입장에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의 인사를 수시로 단행할 수 있는 것은 경험이 충분한 공무원들의 능력을 신뢰하거나 최소한 배워 가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배우면서 한다는 말처럼 섬뜩한 것은 없다. 앞서 말한 FTA 협상 외에도 중앙행정부처의 국장, 과장의 책상에 놓여 있는 중차대한 일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정부 정책 여하에 따라서는 산업구조가 바뀔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을 열심히 배워가면서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전문성과 어학실력 등에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공무원이 정부에는 많이 있다. 문제는 적재적소다. 인재를 꼭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갖다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공부만 하다가 말게 될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만을 위한 인사에 국민이 들러리 서는 것이라면 최소한 공무원인사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공무원이 주인인 공화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ㆍ차관이 되는 자리라는 것이 있고 또 그 자리에 가기 위한 자리가 있어, 공직 인사철이 되면 그 자리에 누가 임명되는지 관심을 끈다. 장ㆍ차관으로 임명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면 대체로 그러한 코스를 밟은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런 관행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장ㆍ차관이 되기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코스라는 것은 마치 등반코스와 같다.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 승진하여 장ㆍ차관이 되려는 공무원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매번 다니는 길로만 산을 오르려는 것, 그리하여 골짝골짝에 어떤 일이 있는지 파악하려 하지 않고 한 곳에 깊이 천착하여 전문성을 획득하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다.

공직은 장ㆍ차관 연수코스 아니다

산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휴식년제를 두지 않는가. 여기서 배워야 한다. 공직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늘 승진하는 코스를 잠시 쉬게 하고 한 자리에서 오래 근무하여 전문성을 갖춘 사람도 가끔은 중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인사권자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문직 공직의 경우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분야를 훤히 꿰고 있는 사람이 한 자리에 꾸준히 근무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직은 공무원들이 장ㆍ차관이 되기 위한 연수코스가 아니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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