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밥을 차려놓고 아이들을 불렀다. "밥 먹어라." 아이들 중 하나가 반찬은 안 먹고 밥만 꼬약꼬약 먹고 있다면 엄마는 야단을 칠 것이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했지, 반찬 먹으라고는 안 했잖아요." 아이가 이렇게 대꾸한다면 혼이 나도 한참을 날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으라면 밥만 먹으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침사 자격증을 가진 구당 김남수(94)옹은 침사 자격증만 있으니 뜸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서울시의 자격정지 처분이 옳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의학에서 침과 뜸은 밥과 반찬의 관계이다. 침을 놓는다고 하면 뜸은 당연히 뜰 줄 안다. 같은 혈자리를 놓고 침은 실처럼 가는 바늘로 딱 그 자리에만 놓아야 하는 반면, 뜸은 그 언저리를 덥혀주면 되기 때문이다. 침은 혈자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큰 일이 나지만 뜸은 비슷하게만 놓아도 부작용이 없다. 일반인들도 조금만 배우면 집에서 제 손으로 뜸을 뜨는 것도 이런 이치에서이다.
침과 뜸은 한 원리
면허 자체도 침사와 구사(뜸사), 침구사로 구분이 되어 있지만 구사 면허 소지자는 한 명도 없다. 침사가 곧 구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침사와 구사를 구분한 것은 일제가 1914년도에 침술 구술 안마술에 대한 면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951년에 국민의료법을 제정하면서 침구술업자라는 명칭으로 침구를 통합했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관행에 맞기 때문이었다.
현재 침사 자격증을 가진 이는 31명인데, 모두 일제 때 면허를 딴 이들이다. 침구사 면허는 51년에 생긴 후 곧 사라졌다. 시험이 없어서 면허를 따지 못하던 데서 나아가 1962년에는 침구사 등에 관한 규정을 국민의료법에서 삭제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침구사 제도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예전에 면허를 딴 사람들만 자격이 있는 방식이 47년간(실제로 면허시험이 있던 시기로 따지면 58년간) 지속되면서 현재 침사 침구사 40명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 75세이다. 자격증 자체는 80년대에도 발급이 되었지만 월남한 이들 가운데 자격증을 못 받은 사람이 소송을 통해 받느라 그렇게 늦어진 것이다. 의료법이 2008년 3월에 개정되면서 침구사 규정이 들어갔으나 침구사 시험은 여전히 치러지지 않고 있다.
침과 뜸이 하나라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한의학계에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의 전문화, 세분화에 맞춰 1999년에 대통령령으로 한의사 전문의 수련제도가 생겼는데, 그 중 한 분야가 침구과이다. 침과 구를 구분하지 않았다.
효과 좋은 전통의술, 제도권으로
면허는 침사지만 김옹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용하다는 침구사이다. 재판 결과를 따르자면 침사와 구사, 침구사 자격증 시험이 있어서 수영선수 박태환군의 티눈을 뜸으로 고쳐준 김옹이 구사 자격이 있는가를 정식으로 판정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구사, 침구사 면허시험을 부활할 계획은 없고 한의사가 침구사 역할을 하는, 현재의 제도만 유지하겠다 한다. 구사 자격을 판정 받을 수 있는 통로는 열어놓지 않은 채 김옹에게 침만 놓으라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낭비는 아닐까.
김옹 개인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의료보험체계로부터 벗어나 김옹의 치료비는 너무 비싸다는 문제도 있다. 위험한 사이비 의료행위를 막기 위해서 국가의 면허제도는 엄격하게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침구술 분야에서 김옹이 쌓은 명성은 실제로 난치병을 완치시킨 사례가 쌓여서 형성된 것이다. 그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침뜸 교육을 받고 활동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억압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일까. 김옹 뿐 아니라 여러 면허 없는 민간의사들의 치유법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민간의료를 어떻게 국가의 의료체계로 끌어들여서 안전하고 값싸게 다양한 진료법을 시민들이 누리도록 해줄 수 있을까를 찾아봤으면 좋겠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