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작가 황석영이 동행한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광주사태'와 '중도실용' 등 소란을 부추긴 말을 스스로 사과하거나 해명하면서 가라앉는 분위기다. 특히 옛 문우(文友)와 논객들이 황석영의 살아온 내력과 문학을 두둔하고 나서 큰 고비를 넘긴 듯하다. 특임대사 자리 얘기는 없었던 일로 하고, '알타이문화연합'도 시민운동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황석영이 가장 힘주어 말한 남북문제는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는 "내년 봄까지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MB와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내년 봄까지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법한데, 도대체 황석영은 왜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듯한 모험을 하는 걸까.
나는 황석영이 '1980년 광주'의 열기 속에 뛰어든 일, 87년 양김(兩金) 분열의 환멸을 겪은 뒤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등 세계사적 전환 속에 단행한 방북 등에 비춰 시대의 징후에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안목에는 한반도의 정체가 그를 다시 안절부절하도록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황석영이 아니라도 한반도를 주시하는 국내외 시각은 한반도가 중대 갈림길에 있다고 본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실험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핵무기 폐기를 전제한 북미 수교,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대규모 경제원조 등의 대타협에 한ㆍ일 양국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6월 중순 한미 정상회담 이전까지 이끌어낼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보수계층을 설득, 오바마의 대북 협상노선에 발맞춰 남북관계 복원에 나설 수 있을까. 황석영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일대 전환을 결단할 것으로 보는 듯하다. 다른 정책은 몰라도 남북문제에서는 '중도실용'이라는 판단이 그 바탕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뒤에는 집권 여당내의 역학관계 변화로 대통령이 남북관계 복원을 추진하는 게 힘에 부칠 수 있다. 자칫 국정이 표류할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끝내 벼랑 끝 전술에 매달리면, 숱한 외교현안을 안고 있는 미국은 '협상 피곤증'을 느끼고 북한문제를 옆으로 제쳐놓을 수도 있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북핵 6자 회담에 참여하는 세계 경제 강국들이 북한 한 나라를 다루지 못하고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마냥 끌려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명실상부한 '큰 나라'로 떠오른 중국이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대로 실제중국이 북한문제 해결을 주도할 경우,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도 협상의 지렛대를 놓치거나 멀어질 수 있다. 남북문제에 관심을 쏟는 황석영 등 많은 인사들이 속앓이를 하는 이유다.
일찍이 1972년 남북은 자주ㆍ 평화ㆍ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표방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야당과 재야를 통틀어 오직 장준하 선생 한 분만 성명을 지지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선생을 변절, 배신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어떤 정권에서 누가 발표했건, 민족사의 진전에 기여하는 것이면 당당하게 지지할 수 있다는 장준하 선생의 자세를 감히 용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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