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 같아 보인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기분이 좋지 않을 듯하다. 뭐라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할까. 그래서 책이라도 읽으라, 숙제는 다 했느냐, 공부 좀 하라는 등 온갖 잔소리를 하면서 다그치기 일쑤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그런 부모다. 아이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뭐라도 좀 하라고 참견하는 부모다. 뭔가를 반드시 하고 있어야 한다는, 아니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눈치 보기 심리를 아이에게 심어주는 꼴이다.
어른이 된 다음부터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낼 자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자유를 잃어버린다. 자녀에게서 그런 자유를 빼앗는 부모들은 어쩌면 자신이 그런 자유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 그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부모는 알 수 없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는 중일 수도 있고, 뭔가 고민되는 문제를 생각 중일 수도 있으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경우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아이에게는 소중한 자유시간이다.
"때로는 전화도 내려놓고 신문도 보지 말고 단 십 분이든 삼십 분이든, 허리를 바짝 펴고 벽을 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라. 이렇게 스스로 묻는 속에서 근원적인 삶의 뿌리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의 커다란 이기로부터 벗어나 하루 한 순간만이라도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말씀을 실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설령 홀로 있다 하더라도, 휴대전화나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일쑤다. 유비쿼터스 세상이라지 않는가.
요즘엔 이른바 '나홀로족'이 늘었다고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 별스럽게 생각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혼자서 영화를 관람하거나 콘서트에 가는 것도 공연히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는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처량하고 궁상맞은 일로 여겨지는 셈이다. 온전히 혼자 있을 때는 온라인 게임을 할 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진정으로 혼자 있는 경우라 해도 좋은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와 문화는 혼자 있는 것,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 사회이자 문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무기력과 게으름에 불과하고, 혼자 있는 것은 비사교적인 외톨이에 불과하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건 독립적, 자주적, 주체적이라는 뜻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진정한 휴식이자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 볼 수는 없을까. 아이에게서 그런 휴식과 성찰을 빼앗아온 못된 부모로서, 앞으로는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을 허하리라 다짐해 본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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