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은 한옥과 같아요. 언뜻 불편해보여도 한번 익숙해지면 그보다 좋을 수 없죠."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작년 8월 한국에 부임해 힘든 시절을 겪은 커트 올슨(사진ㆍ55) ING생명 사장은 10개월 동안의 한국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성북동 개량 한옥에 살고 있는 그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시장은 규제가 엄격하고 경쟁도 치열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서 직접 겪어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다"고 설명했다.
규제를 예로 들면 미국의 경우 규제당국이 50개 주마다 따로 있고 시스템도 달라 전국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ING의 경우 적응하기 매우 까다롭다는 것. 그러나 한국은 전국을 통틀어 단 하나의 규제당국이 있고, 한 회사 당 한명의 금융당국 직원이 지정돼 있어 소통이 매우 수월하다고 그는 전했다.
또한 한국의 가족적 분위기가 네덜란드계인 ING그룹의 문화와 크게 비슷하다고 올슨 사장은 설명했다. 올 9월 만 32년째 ING그룹에서 근무하는 그는 "ING는 특유의 가족주의 문화를 지니고 있어 장기 근속자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내 가장 친한 친구도 우리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ING의 위기극복 방식도 철저히 가족주의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ING도 다른 생명보험사와 마찬가지로 매출이 급감했지만 '해고 없는 경영 효율화'라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올슨 사장은 "구조조정의 핵심은 해고가 아니라 매출에 맞게 비용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매출을 올릴 수 있다면 출중한 인재를 고용하는 것도 구조조정"이라고 강조했다.
ING의 가족주의는 고객 영업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ING는 지난달부터 업계 최초로 실직한 고객에게 보험료를 전액 환급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고객들이 보장성 보험을 필요로 하지만,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해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을 경우엔 보장은커녕 이미 낸 보험료의 상당액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
올슨 사장은 "보험사 역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지만, 공공복리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며 "고객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마인드를 갖기 위해 전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함께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ING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품이 바로 '기부보험'이다. 2001년 업계 최초로 ING가 도입한 기부보험은 보험의 수익자가 본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자선단체로 돼 있는 상품. 즉, 유사시 보험금이 나오면 자선단체에 전액 기부하게 돼 있어, 소액의 보험료로 목돈의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계기로 은행ㆍ보험ㆍ증권업 간 장벽이 무너지는 흐름과 관련해서 그는 "ING생명은 당분간 최고의 보험상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올슨 사장은 "영미권에서는 10~15년 전 이 같은 금융업 통합바람이 불었지만 이젠 한계가 드러나 요즘은 '헤어지는' 중"이라며 "그러나 한국인들은 영미권 고객들과 달리 '최고의 상품'보단 '브랜드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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