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복싱 챔피언이기도 했지만 지금 미화원이란 직업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1990년대 중반 동양챔피언으로 한 주먹을 과시했던 40대 복서 출신이 환경미화원이 돼 화제다. 주인공은 서울 중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인 최재원(43)씨.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1989년 최씨는 동양주니어페더급 챔피언이 됐고 국내서 18전 전승을 거두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1위도 차지했다.
링 위에서는 무서울 게 없었지만 링 밖은 낯설기만 했다. 94년 7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윌프레도 바스케스(푸에르토리코)와 세계 타이틀매치에서 분패한 뒤 내리막 길은 시작됐다. 일본으로도 진출해 4경기를 더 치른 뒤 은퇴한 그는 복싱 팬들의 기억에서도 점차 사라졌다.
20년 '복싱 외길'뒤에 맞닥뜨린 사회.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탓에 직장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개인사업은 물론 노점상 단속과 웨이터 보조 등 궂은 일은 다 했다. 사업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와도 갈라섰다.
2003년 8월, 마침내 중구청 환경미화원 공채 2기 시험에 합격했다. 야구선수가 꿈인 외아들 용환(19)군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라도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쁨도 잠시, 적은 월급 때문에 아들은 결국 야구를 그만둬야 했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글러브를 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아들은 금세 두각을 나타내 복싱 시작 7개월 만에 서울 신인선수권대회에 준우승, 전국대회 3위를 차지했다. 최씨는 다음 달 군에 입대할 예정인 아들과 함께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게 목표이자 꿈이라고 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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