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헌법 제10조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근거해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한 환자들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의 기준이 무엇인지, 또 의식불명의 환자가 과연 죽고 싶어하는지를 판단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까지 명쾌하게 풀어냈다고 하긴 어렵다.
우선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대해 ▦전적으로 기계장치에 의해 연명하고 ▦죽음의 과정에서 종기(終期)를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한 상태로 정의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의문점 투성이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김모(77)씨의 경우,담당 주치의가 회복 가능성을 5% 미만으로 봤는데 이를 두고도 대법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다수 의견을 낸 9명의 대법관은 "담당 주치의는 회복가능성이 5% 미만이라고 했으나 진료기록 감정의와 신체 감정의들은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을 냈다"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대희, 양창수 대법관은 "원고의 의식 회복가능성이 5% 미만으로라도 남아 있는 점으로 볼 때 원고가 의식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홍훈 김능환 대법관도 "식물인간 상태로 10년 이상이 흐른 뒤에 의식이 회복된 예도 있다"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라는 잣대 자체에 의문을 표시했다.
대법원은 전문의사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한쪽이 불복해 소송으로 이어지면 같은 논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치료중단을 바라는지에 대한 추정적 의사 확인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가족이 아닌 환자 본인의 연명치료 거부 의사가 있었을 때에만 존엄사가 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는데, 의식 불명인 환자에게서 그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대법원은 사전에 의사를 밝히지 않고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해서는, 평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한 이야기,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와 나이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김씨에 대해서는 그가 기독교 신자였고, 평소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마라. 기계에 의해서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실 등을 들어 연명치료 거부 의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병원비 부담 등을 이유로 가족들이 환자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실제 안대희, 양창수 대법관은 "환자의 보호자가 자신의 사정이나 편의, 이익을 위해 환자의 자기 결정을 왜곡하고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일이 쉽사리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환자의 '가정적(假定的) 의사'는 연명치료 중단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환자 가족의 의사가 '환자의 의사'로 둔갑하지 않도록 후속조치가 강구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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