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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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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

입력
2009.05.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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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죽음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우리 것이라 부를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죽음이 우리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죽음은 생각하기 싫은 주제이며 가능하면 비껴가고 싶은 운명이다. 하지만 죽음의 손님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떤 이에게는 곁에 늘 있던 오랜 동무처럼 찾아오고, 다른 이에게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으로 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은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가장 큰 충격과 슬픔을 경험하는 것은 가족들일 것이다. 보통 죽음을 맞는 가족들은 임종부터 장례기간 사이 많이 울지만 죽음에 대한 실존적 체험은 공식적이고 복잡한 절차가 다 끝난 후 가족들만 남겨졌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상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 단계

스위스 태생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들이 경험하는 상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과정을 발견하였다. '비탄 과정' 또는 '임종 과정' 이라 불리는 그의 모델을 다룬 저서 "죽음과 임종에 대하여"는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의사, 간호사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그녀가 제시한 비탄과정은 5단계로 요약되는데,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떠나 보낸 배우자와 가족이 경험하는 비탄에도 적용된다.

비탄의 첫 단계는 '부정'이다. 흔히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방어 기제다. "그럴 리가 없다"며 고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 죽음을 인식 하지 못한다. 익숙한 장소에서 고인을 찾거나 밥상을 차리는 등 고인이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다음은 '분노'단계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며 화 내고 절대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자신을 세상에 혼자 남겨둔 고인을 원망하기도 하고 의료진이나 주변 사람들을 탓하기도 한다. 세 번째 '타협'단계는 죽음 이후보다는 이전 시기, 즉 임종과정에서 자주 발견된다. 환자를 치유하거나 죽음을 막아달라며 절대자에게 빌고 매달린다. 그렇게만 된다면 "새 사람이 되겠다", "재산을 기부 하겠다"고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바람이 현실화되지 않을 때 가족은 좌절, 절망감, 무망감을 느끼는 '우울'단계에 들어간다. 고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의 생각을 갖기도 한다. 고인뿐만 아니라 희망, 꿈, 미래가 상실됨을 슬퍼하게 된다. 심각한 경우 삶에 대한 의미나 의지, 자기통제력을 잃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이다. 수용은 체념과는 차이가 있다. 죽음을 그저 묵묵히 감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함을 되찾고 내적 성장을 재기하는 것이다. 고인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살아남은 자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모든 사람들이 위 단계들을 순서대로 다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단계를 건너 뛰기도 하고, 한 단계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어떤 이는 '부정'을 극복한 후 곧바로 '수용'에 도달하기도 한다. 정상적 비탄과정은 보통 6개월에서 1년 걸리지만 수용단계에 도달하는데 5년, 10년 걸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단계에 고착되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의 사랑과 위로가 중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큰 상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얼굴로 찾아오면 낯을 익히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죽음을 성공적으로 수용하려면 주변 사람들의 함께함과 사랑, 위로가 필요하다. 타나토스(죽음)의 힘은 강력하지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은 바로 사랑이다.

필리아(인간의 우애)와 아가페(신의 사랑) 모두 필요하다.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이 하루 빨리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기원한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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