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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공인이 서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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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공인이 서는 자리

입력
2009.05.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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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같은 이름을 돋보기로 들여다 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들의 명단이다. 결국 여기에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 장례사상 가장 많은 1,383명의 위원은 유족측과 정부의 합의를 통해 구성됐다. 현 정권과 전 정권의 사람들이 최초로 상의하고 합의해서 하게 된 일이 전직 대통령의 장례라니, 가슴 아픈 역사의 비극이다.

다시 보게 된 인간 문재인

명단을 보면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서울 역사박물관 분향소와 서울역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이 다르듯 같은 장의위원이라도 당연히 생각은 서로 다르겠지만, 장례를 원만하게 잘 치르고 그 이후의 대한민국 운영ㆍ관리와 발전에 최대한 힘을 합쳐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게 되기를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자살 이후, 이 나라의 주요 인사들 모두가 맨몸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선임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그는 모든 상황의 중심에 서서 중심을 잃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처리해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경위가 초미의 관심사일 때 바위에서 뛰어내렸다는 것, 언제 숨졌다는 것, 유서를 남겼다는 것, 그러니까 자살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최초로 알려 준 사람이 문재인 전 실장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는 어떻게 그리도 냉정하고 침착할 수 있었을까.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요 동지로서 누구보다 더 놀라고 슬펐을 텐데도 어디까지나 차분하고 절제돼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동안 유능한 변호사로서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언론 담당창구 역할까지 맡아 기자들을 상대했던 그는 장례방식에 대해서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국민장으로 치르자는 내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부산에서 함께 사무실을 쓴 인연으로 처음 맺어진 이후, '왕수석'으로 활동하던 청와대 재직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노 전 대통령을 돕는 인간적 의리도 돋보인다. 그라고 왜 분노가 없고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이 글은 특정인을 칭찬하고 부각시키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그를 통해 공직자의 모랄과 모습을 되새겨 보기 위한 것이다. 공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청렴성 도덕성을 갖춰야 하겠지만, 그에 더해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는 능력과 절제, 통합과 포용의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각종 갈등이 중첩된 나라일수록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이런 능력을 꼭 갖춰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생각하면 어떤 말이 맨 먼저 떠오르는가. 슬픔, 절망감, 충격, (나라와 사회에 대한) 걱정, 그의 억울함, 검찰…등등 많겠지만 나는 놀랍고 무서웠다. 대통령을 한 사람이 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놀랍고 그보다 더한 일도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자연히 나라의 최고 공직자인 대통령의 캐릭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 죄'를 지었다고 비판하면서,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던 피의자이므로 국민장이 걸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장은 긴 안목에서 잘된 결정이며 누구나 존중하고 경건하게 치러야 할 기정사실이다. 국민장은 대립되는 양쪽 진영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이 알려 준 것

인간은 누구나 아무도 모방할 수 없고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기호체계이며 상징이다. 노무현이라는 기호체계와 상징은 한국 역사에 우뚝하며 그 자국(또는 상처)이 아주 깊다. 그의 죽음은 공직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어디에 어떻게 서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너무도 착잡하다. 그리고 아프다.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며 한국 사회를 살아낸다는 것은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빈다.

임철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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