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우보슝 대만 집권 국민당 주석의 26일 베이징 회담은 대성공이었다. 후 주석은 "양안간 적대상태를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를 공동 추진하자"고 했고, 우 주석은 "건설적인 의견"이라며 "우리가 함께 가는 방향은 정확하다"고 화답했다. 양안관계가 군사충돌 단계(1949~1978)와 평화대치 단계(1979~1987)를 지나 민간교류단계(1989년~ 현재)에서 바야흐로 공동번영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국면에 처한 남북관계에 비춰 부럽기 짝이 없다.
▦ 선경후정(先經後政ㆍ경제 먼저 정치 나중), 선이후난(先易後難ㆍ쉬운 것 먼저 어려운 것 나중). 양안이 따르는 원칙은 남북이 한때 추구했던 정경분리, 선공후득(先供後得) 원칙 등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양안은 앞으로 나가고, 남북은 대결시대로 고속 역주행 중이다. 근본적 차이는 자신감과 불안감 문제다. 양안은 서로 꿀릴 게 없으니 자신 있게 신뢰 구축과 관계 형성에 나선다. 반면 북한 김정일 정권은 불안감 덩어리다. 남북의 격차, 북의 국제적 고립이 그 기저에 있다. 냉전적 사고 틀에 머물고 있는 남측 집권세력도 대북 불안과 불신에서 자유롭지 않다.
▦ 북한의 2차 핵실험은 기본적으로 김정일 체제 불안감의 산물이다. 하지만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그 불안감 관리에 실패한 결과이기도 하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차 평양에 간 노무현 대통령은 두 번이나 김 위원장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김 위원장의 건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동맹국과 얼굴을 붉히면서 PSI 전면가입, 북한 급변사태 대비 작계5029 작성, 북한 인권문제 정면제기 등의 유보를 고집한 것도 김정일 집단의 불안관리 차원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다.
▦ 김 위원장은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나 엊그제 2차 핵실험 단추를 눌렀다. 그러나 그의 건강을 빌던 노 전 대통령은 먼저 생을 버리고 오늘 영면의 길을 떠난다. 전국이 추도 물결로 덮이고 미워하던 사람들까지 마음을 열고 있지만 발길이 떨어질까. 재임시절 가장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한반도 평화가 위기로 치닫는 뉴스가 영전에 어지러우니 말이다. 하지만 이 위기는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니 열 네 줄 유서에 적은 대로 고통과 원망과 함께 다 내려놓고 편히 떠나시라. 그래도 정 걸린다면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부활하시라.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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