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업계 '빅3'가 와인시장에서 격돌한다. 와인가격의 거품을 뺀다는 명분은 같지만, 속내는 상류층이 많이 포진한 와인 애호가들을 누가 확보할 것이냐는 유통 대리전 성격이 짙다. 미끼상품에 국한된 가격 경쟁이 자칫 와인시장의 불명확성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백화점은 28일 와인가격의 거품을 빼기 위해 고급와인을 대상으로 '그린프라이스'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그린프라이스는 상시 임의할인을 없애고 가격정찰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와인가격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롯데는 6월 1일부터 25개 전점에서 샤토 딸보, 샤토 로칠드 등 그랑크뤼(1등급 이상 고가와인) 와인 34개와 빈티지제품 등 74개 품목의 가격을 최고 60%까지 낮추기로 했다.
현대백화점도 29일부터 그랑크뤼급 와인 9개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가별 인기와인 25개 품목으로 구성된 'H-스타일' 와인 34개 품목을 선보인다. H-스타일 와인은 최소 마진을 적용해 시중 판매가보다 20~50% 저렴하다.
앞서 신세계는 5일 주류회사 신세계L&B를 설립하고 시중가보다 20~40%까지 와인가격을 낮춰 소비자 이익을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백화점들의 와인시장 쟁탈전은 매출 확대보다는 고객 흡인 수단을 선점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와인사업은 순전히 유통에 힘을 싣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빅3' 중 와인매출 1위로 알려진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300억원대에 불과하다. 전체 매출 중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와인 소비층이 문화, 경제적 리더층인 만큼, 이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백화점 고정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고 말했다.
와인업계는 백화점들이 앞 다퉈 가격 거품을 빼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대표상품으로 내놓은 그랑크뤼급 와인들은 국내 약 60종이 들어와있는데, 대부분 병행 수입업자들이 들여오는 오픈마켓 상품이라 과거에도 폭리를 취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가격 낮추기나 정찰제에 적용되는 품목 비중이 전체 판매품목 대비 매우 낮다는 것도 문제다. 롯데의 경우 전체 판매품목은 1,000종에 이르지만, 그린프라이스를 실시하는 것은 5%(74개) 정도에 불과하다. 해외 9개국에서 260여종을 직소싱해서 들여온다는 신세계의 경우 대부분 국내 비교대상이 없는 제품들이어서 가격거품이 얼마나 제거됐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업계의 가격경쟁 자체는 소비자들에게 이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와인가격 거품 제거가 실효를 거두려면 미끼상품만이 아닌 전 품목에 걸쳐 합리적인 가격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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