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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오즈마´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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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오즈마´캐피탈

입력
2009.05.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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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마* 캐피탈 - 송기영

그 별에는 수십억의 얼굴이 살아요. 모두 백 년 안팎으로 모인 얼굴인데, 살아요. 머리맡에는 흙으로 만든 태양이 쟁글쟁글 얼굴을 달구고요. 입들은 모두 빵 굽기에 알맞은 온도로 벌어져 있어요. 탐스런 구두끈을 당기면 중력이 조금씩 준다던가요. 흘린 땀이 당신을 지우는 일이 없어서, 산다던가요. 그래요, 왜 사지 못하겠어요. 그게 뭐든 동글납작 부푸는 시공을 지나, 한번 만나요. 살 수만 있다면

이 별에도 수십억의 얼굴들이 서로의 표정을 배우며 살아요. 해 아래 새로운 목숨을 빚은 건지 빚진 건지 몰라도, 살아요. 똑같은 얼굴을 서로 돌려 막으며 오늘도 해가 지네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경매로 낙찰받은 달에다가 나를 심었어요. 다만 그게 무엇의 얼굴인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해요.

*오즈마(Ozma):미국 전파 천문학자인 프랭크 드레이크가 외계 생명체 탐사 계획에 붙인 이름.

● 우리는 이렇게 외계를 희망대로 상상한다. 경매에 나가 아파트 대신 달 하나를 헐값에 낙찰받을 수 있는 어떤 별을 흐뭇하게 꿈꾸곤 한다. 꿈 깨라. 시인이 이 시를 쓰며 자기 시작노트에 메모했듯 지구에서 넌 이미 외계인으로 불리지 않는가? 너네 별로 돌아가! 지구인들이 내뱉는 이런 구박에 늘 서러워하지 않는가? 아아 정말 이 징그러운 지구인들과 작별하고 내 별로 돌아가고 싶다. 가자마자 달 하나를 분양받고 모두 똑같이 못생긴 동포들 사이에서 누구도 날 외계인이라고 멸시하지 않는 곳. 지구인들! 너네 그렇게 잘났냐? 외계인도 인간이야, 인간!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송기영 1972년 생. 2008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 수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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